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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Apr 12. 2024

X 너는 얼렁뚱땅 세상을 재는 각도기

친애하는 여러분

   너의 이름은

   언젠가 일요일,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다가 X의 전화를 받았다. 늘 그랬듯이 기사에 내보낼 인터뷰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X에게는 인터뷰를 두어 차례 해준 적이 있다. 인터뷰를 해줄 때마다 기자란 직업은 정말 쉽지가 않다고 생각한다. 쉬운 직업이 어디에 있겠냐만. X는 인스타 스토리를 통해서 요일 불문, 밤낮 불문 인터뷰에 응해줄 사람을 구하고 있다. 가끔은 새벽에 비를 쫄딱 맞아가면서 현장에 있는 사진이 올라온다. 너무나 피로할 것 같아서 나는 기자로 못 버텨낼 거란 생각을 자주 한다. X는 버텨내고 있다. 기특하고 씩씩하게.


   X는 좋은 글을 쓴다. 좋은 '기사'가 아니라 좋은 '글'을 쓴다. X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X의 기사를 본 적은 거의 없다. 그냥 뉴스 자체를 잘 안 본다. 매일 누가 죽고, 누가 누구를 폭행했고, 누가 누구를 음해했고... 맞고 죽어나가는 누군가의 소식 이후로 전해지는 밀가루값 상승이니 원유 상승이니 취업 절벽이니. 죽은 자와 산 자를 모두 괴롭게 하는 사회 전반적인 소식이 버겁다.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나의 알량한 평온을 위해서 세상의 소식과 멀어진 지 조금 됐다. 세상의 소식과는 멀어졌지만 X가 올리는 인스타의 글과는 가깝고 싶다. X는, 내가 읽고 싶어 하는 글들을 쓴다. 솔직하고 따뜻한 글.


   참, 예전에 X는 이달의 좋은 기사 상을 받았다. 좋은 글뿐만 아니라 좋은 기사도 쓰는 모양이다. 하긴, 당연한 얘기지만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좋은 기사를 쓰지 못할 리가 없다. 좋은 콘텐츠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다른 좋은 것을 또 만들어낼 수 있다. X가 상을 받은 기사를 찾아 읽어 보았다. 읽으면서 X다운 기사라고 생각했다. 사회적 약자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 부족을 꼬집는 실태 기사였다. X는 선배가 다 한 기사에 본인은 숟가락만 얹었다고 겸손을 떨었다. 


   X는 본인의 이름 밑에 듣고 뛰고 쓰겠다고 선언해두었다. X는 자신이 그것들을 잘하고 있는지 의심하면서 지낸다. 벽 귀퉁이를 발로 차고 마스크 밑으로 눈물 콧물을 삼키면서 기우뚱댈지언정 버티고 있는 X는 무엇이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기자 X로는 충분치 않다. X 너의 이름은... 글쟁이 X다. 


   세상을 얼렁뚱땅 재는 너의 각도기

   내가 좋아하는 X의 인스타 글 시리즈 이름은 '각또기'다. 본인의 이름을 잘 얼버무려 붙인 좋은 이름이다.


   X의 글들은 8할은 제 눈에 못나 보이는 스스로를 탓하고 어르고 달래는 글이고, 1할은 울었다는 글이고, 나머지 1할은 하루를 활기차게 복기하는 글이다. 내가 쓰는 글도 8할쯤은 못나고 불안한 나를 성토하는 글이기 때문에 X의 글을 읽을 땐 묘한 동질감을 갖게 된다. 어느 날 김밥천국 육개장이 늦게 나와 울었다던, 벽 귀퉁이를 한참 발로 찼다던 X의 글을 읽었을 때 나는 마침 왈칵 치밀어 오른 눈물을 삼키며 골목 어귀를 서성대던 참이었다. 왠지 X의 부산한 웃음을 눈앞에서 본 것 같아서, 우리의 쓸데없는 생각과 슬픔들을 나누며 와하하 웃은 것만 같아서 나는 기분이 조금 괜찮아졌다. 


   X는 각또기에 종종 본인의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적는다. 그런 일기를 올린 다음날 아침에 X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나처럼 부끄러움과 머쓱함을 느낄까? X도 소심하고 여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나는 언젠가 D가 나에게 해주었던 말을 그대로 X에게 말해주고 싶다. 혼란과 불안의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내보일 수 있는 건 큰 용기다. 그리고 나는 X의 그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공감하면서 기쁘고 즐겁게 보고 있다.


   앞으로도 X가 혼란하고 고민하길 바란다. X 같은 사람들은 번뇌에 휩싸여 있을 때일수록 가슴을 콕 찌르는 문장을 쓰기 때문이다. 정돈되지 않은 감정들 속에서 X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지가 반짝반짝 빛난다. X가, 그리고 내가, 비록 지금은 세상을 어설프게 측량할지라도 우리 고유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들이민 각도기가 얼렁뚱땅 비뚤어져있으면 어때. 우리는 어디에 어떻게 각도기를 두어볼지 고민하는 사람이란 게 중요하지. 


   우리, 계속 이렇게 뒤죽박죽 재밌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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