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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May 01. 2024

플랭크 중에서도 악독한 놈, 코펜하겐 플랭크

나의 헬스 일기

   이 악독한 녀석

   코어. 듣기만 해도 근사하고 요원한 말이다. 코어는 배와 척추의 속근육을 이른다. 코어의 주 기능은 버티는 것이다. 걸어 다닐 때, 자전거를 탈 때, 덜컹이는 대중교통에 있을 때 우리 몸이 균형을 잡도록 해주는 코어는, 매일 쓰기 때문에 되려 강화가 쉽지 않다. 매일 쓰는 범위 외에는 힘을 줄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일상의 사용 범위 밖에서는 코어를 쓰는 게 부당하다(!)고까지 느껴진다. 코어 강화에는 역시 플랭크가 빠질 수 없다.


   플랭크의 기본자세, 그러니까 팔 굽혀 펴기 자세처럼 엎드려서 팔꿈치를 접고 버티는 기본 플랭크 자세는 여러 변형이 있다. 몸을 옆으로 돌리기도 하고 다리를 들기도 한다. 잘 있는 팔꿈치를 돌아가면서 뗐다 붙였다 하기도 한다(대체 왜 그러는 거야). 코로나로 한창 살이 포동히 올랐을 때 집에서 별별 플랭크를 다 해봤지만 하나같이 악독하다. 특히 최근에 트레이너에게 배운 코펜하겐 플랭크는 플랭크 중에서도 악독함으로 상위 10% 안에 들어간다고 하겠다.


   코펜하겐 플랭크는 헬스장에 널린 검은색 벤치가 필요하다. 의자를 가져와서 한쪽 발목은 벤치 위에, 다른 발목은 벤치 아래에 두어 두 발목이 벤치를 가운데 두고 맞붙게 한다. 몸을 바닥이 아닌 옆을 보게 돌린다. 이때 목이 움츠러들지 않도록 길~게 뽑아준다. 한쪽 팔꿈치로 바닥을 딛고. 준비가 되셨나요? 그럼 이제 예상한 대로, 팔꿈치로 바닥을 지지하고 몸을 띄운다. 벤치 아래에 둔 다리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힘껏 버틴다. 이제 당신의 옆구리를 비롯한 몸통, 허벅지 안쪽이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버틸 것이다. 부들거리며 떨어지려는 다리를 벤치에 붙여두려는 이 동작은 당신의 온몸을 흔들어댈 것이다. 버티는 모습을 제3자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면 애처롭기까지 할 것이다.  


   잘 버텼는가? 방심하지 마라. 끝나지 않았다. 당연히 반대쪽도 해야지. 몸을 반대로 향하게 해서 또 버텨준다. 이제 한 세트를 마쳤다. 고생하셨다. 그럼 이제 쉬었다가... 또 해야지? 최소한 3 세트 정도 반복해 주면 굉장히 강해진 느낌이 들..지는 않고. 하루 갓생을 찢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루하루가 무력하다거나 지루할 때 해보세요.  


   인간은 왜 이런 짓을 하게 된 걸까

   코펜하겐 플랭크를 하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 걸 처음 고안해 낸 인간은 누구지? 왜 인간은 사냥도 안 하고 나무도 안 타게 되어서 이런 걸 일부러 해야만 하는 거야. 아니지. 우리가 만들어낸 온실에서 신체 기능을 쓸 필요 없이 사는 게 자연스러운 진화의 방향이라면 나는 지금 인간의 위대한 진화의 한 단계를 거스르고 있는 게 아닐까? 사실은 이런 류의 칼로리만 잡아먹고 생산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생각들은 플랭크를 안 할 때도 숨 쉬듯이 하고 있다.


   코어 운동의 놀라운 점은 생각보다 휙휙 빨리 몸이 바뀐다는 사실이다. 처음 코펜하겐 플랭크를 했을 때 나는 시작한 직후 즉시 다리를 부들거리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빨리! 빨리!! 외치면 30초가 내 편의를 봐주며 정말 빠르게 흐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계속 빨리!를 외치고 있었다. 우리의 파워 T 트레이너는 내 비명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평온한 얼굴로 시간을 재고 있을 뿐이었다. 딴 말이지만 트레이너, 필라테스/요가 선생님은 타인의 고통에 과몰입하지 않아야 가능한 직업인 것만 같다. 겨우 한쪽을 마치고 반대쪽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너무나 크게 절망한 나머지 바닥에 누워 버렸다. 코펜하겐 플랭크를 하다가 죽을 것만 같았다.


   코펜하겐 플랭크 숙제를 해야 할 때 눈물이 그렁할 정도로 하기 싫었다. 하지만 3대 200에 가까워지겠다는 결심은 내가 선택한 일이니 책임도 내가 져야지 별 수 있겠는가. 괜히 물도 두 번 마시고 헬스장 여기저기 기구를 어슬렁거리다가 벤치에 두 발목을 붙였다. 코어가 그새 좀 강화가 되었는지 시작한 후 몇 초간은 평온했다. 약 13초부터 다리는 애처롭게 부들거렸다. 여전히 30초를 채우기는 어렵고 속으로 빨리!!를 다급히 외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나는 12초의 시간을 버틸 만큼은 성장한 셈이다.


   다음 번엔 과연 몇 초를 더 벌었을지 궁금해진다. 궁금하다고 했지 하고 싶다고는 안 했다. 아, 정말이지! 인간은 왜 이렇게까지 해야만 몸의 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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