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어
두 팔에 문제가 있었다. 팔꿈치부터 손가락까지 저릿하게 아프다가 감각이 없었다. 병원에서 운동을 쉬어야 한다고 강권했다. 의사의 권고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곤 했지만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다. 며칠 내내 하루종일 팔이 저릿하고 아파서 운동은커녕 누워만 있어도 힘들었다. 예정되어 있던 PT 수업을 취소하고 헬스장 이용권을 정지해 놓으면서 잠깐 근손실이 우려되기도 했다. 아직 덜 아파서 든 생각이었다.
팔의 통증은 목 디스크 때문이었다. 우려했던 것처럼 뇌의 문제는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앞으로 평생 이런 아픔을 지고 살아야 하나 생각하면 막막하고 두려웠다. 근손실이고 뭐고 일상이 더 문제였다. 숟가락질도 버거운 지경이었다. 열심히 한의원을 다니면서 깨어있는 내내 아프던 것이 절반 정도로 줄고, 또 그 절반, 그그 절반으로 줄었다. 고통의 지속성과 강도가 떨어져서 이전의 일상이 회복되자마자 든 느낌. 헬스장에 가고 싶다.
러닝머신에서 뛰고 싶었다. 천천히 1씩 올라가는 빨간 숫자들을 보면서 느리게 달리기. 마음에서는 1분이 지났는데 러닝머신 화면에서는 20초밖에 안 지나서 노여워하기. 달리기로 땀을 쭉 빼고 스쿼트를 하고 싶었다. 숨을 머금고 앉아 아랫배로 허벅지를 꾹 누르기. 발바닥을 눌러 일어나기. 왜 그런 게 하고 싶지? 희한한 일이었다. 운동을 맹렬히 할 적에도 유산소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빼먹었다. 하체 하는 날이면 매우 괴로워하면서 헬스장에 갔다. 그런데 복귀하는 운동으로 하체가 하고 싶다고?
하고 싶은 마음은 들었지만 할 수 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헬스장에 가서 괜히 자괴감만 드는 게 아닌지 무서운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일단 러닝머신을 뛰었다. 속도 10으로 느리게 뛰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천천히 올라가는 빨간 숫자를 읽었다. 1.11km가 됐을 때 러닝머신에서 내려왔다. 상쾌했다. 앞으로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뛸 수 있는 거리를 늘려가려고 한다. 페이스를 놓치지 않고 단번에 3km를 뛸 수 있으면 좋겠다.
스쿼트는… 정말 형편없었다. 그새 감을 많이 잃었다. 특히 발의 초기 설정값을 까먹어서 내려갈 때 오른발이 자꾸 밖으로 돌았다. 아랫배로 허벅지를 꾹 누르는 느낌이 잘 안 났다. 깊이가 얕아졌고 막판엔 허리가 조금 말렸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하고 싶어서 한 운동은 맛있었다.
나 원래 이랬지?
오랜만에 복귀의 탄을 쏘아 올린 운동이었으므로 간소하게 끝냈다. 러닝, 불가리안 스플릿 스쿼트, 바벨 스쿼트를 가벼운 무게로 3 세트씩만 하고 끝냈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눈썹을 헤치고 눈으로 흘러드는 땀을 닦으면서 비실비실 웃음이 났다. 근래에는 3대 200이라는 목표와 무게에 집착했다. 들지 못한 무게를 생각하느라 이렇게 웃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목표 설정과 성취는 중요하지만 때로는 목표가 없어야 할지도 모른다.
목표가 뚜렷한 스쿼트는 내게 고도의 몰입감을 주었었다. 원판을 갈아 끼우면서 겹겹의 원판이 자랑스러웠다. 어렵던 무게가 만만한 놈이 될 땐 엔돌핀이 펑펑 터졌다. 그러나 목표는 그만큼이나 근심과 숙제로 나를 떠밀기도 했었던 것이다. 중량을 견디고 들어 올리는 것으로 내 정신력을 증명받으려던 어리석음은, 이전에 다른 일에서 수천 번이나 반복했듯이 내 박약을 찾아 회초리질하려고 두리번거렸다. 나는 아마 깔리고 있었을 것이다. 서서히. 가엾게.
더럽게 못한 스쿼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엄청 재미있었다. 어느 정도로 재미가 있었냐면, 지금 스쿼트 생각뿐이다. 대중교통 안에서 스쿼트 관련한 유튜브를 많이 본다. 그러다가 피스톨 스쿼트라는 것을 발견했다. 한쪽 다리로만 스쿼트를 하는 것이다. 다만 다른 다리를 앞으로 쭉 뻗어 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피스톨 스쿼트의 달인들은 ‘드래곤 피스톨 스쿼트’라는 것을 한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우니 유튜브에 검색해서 보시길.
드래곤 피스톨 스쿼트를 한 번 보고 나면 미친, 이렇게까지 해야 함?이라는 얘기가 절로 나올 것이다. 나는 그랬는데 아니면 말고. 어쨌든 드래곤 피스톨 스쿼트는 내가 닿기엔 너무나 먼 것이고, 당분간 피스톨 스쿼트의 기본자세를 연습할까 한다. 일단 바닥에 앉아있다가 한 발로만 일어나는 연습을 어젯밤에 시작했다. 코어, 발목과 고관절의 가동 범위 등이 복합적으로 따라줘야 가능한 동작이므로 당연히 지금은 못한다.
당연히 못하던 걸 얼레벌레 하게 되는 게 운동의 묘미란 걸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다들 아실 거다. 여러분도 바닥에서 한 발만 이용해서 한 번 일어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