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오늘은 이쯤에서 포기해도 될까요?

러닝머신만 타기는 지겹잖아

by 밈혜윤

아 준비 다 했는데!

헬스장 문을 열어젖혔다. 옷도 갈아입고 신발도 갈아 신었다. 야무지게 물통도 챙겼다. 오늘은 밈혜윤인가 뭔가 나부랭이가 가르쳐준 것처럼 스미스머신에서 스플릿 어쩌구를 해보리라. 이럴 수가...! 스미스머신에, 누군가가, 있다. 딱히 다른 운동 기구를 쓸 줄도 모르는데. 난 어디로 가야 하지? 그냥 집에 갈까?


그런 날이 있다. 야무지게 오늘은 무슨 운동을 해야지, 마음먹고 예습을 했는데 하필이면 그 기구가 오늘따라 계속 매진인 거다. 아니면 이런 날도 있다. 오늘은 꼭, 스쿼트를 35kg까지(근데 저는 70kg 들어요. 어쩌라구 싶나요? 저도 알아요) 들어보겠다고 결심했는데 너무 힘든 거다. 운동이고 나발이고 다 던지고 집에 가고 싶은 상황이 펼쳐진다. 어쩔 것인가?


왠지 당신은 여기까지 읽고 '이 녀석, 포기하지 말라는 진부한 말을 할 모양이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글은 그런 글이 아니란 말씀! 오늘은 적절한 타협과, 타협 후 쓰나미처럼 불어닥치는 자괴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황리에 매진 중인 기구 앞에서 고뇌하던 당신, 혹은 다짐했던 무게를 들지 못하고 일단 물러서는 당신은 이상한 자괴감을 느낄 것이다. 내가 그렇지, 뭐.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다고. 혹은 이상한 분노를 느끼게 된다. 밥 벌어먹고살기도 힘든데 내가 운동까지 죽을 동 살 동 해야 하냐?


당신이 자괴감을 느끼든 분노를 느끼든 그 기저에는 '열심히 해볼 의지'가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상황과 컨디션이 가로막았을 뿐이다. 한 발 물러났음에도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어쨌든 준비하고 헬스장에 와서 발을 내딛지 않았던가. 우리는 운동도 잘해야 하지만, 자신과의 타협도 잘해야 한다. 오늘 내가 정신 건강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 타협하는 방식을 보여주겠다.


오늘은 회복 운동하는 날이야~

나도 꼭 그런 날이 있다. 루틴 야무지게 짜서 갔는데 내가 쓰려는 곳마다 사람들이 북적거릴 때. 엊그제만 해도 잘 들리던 무게가 오늘은 도저히 안 들릴 때. 그럴 때 나는 무리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기분이 다르듯 우리의 컨디션은 매일 다르다. 엊그제 컨디션이 105였는데 오늘 70일 수도 있다. 이럴 때 무리하다가 다친다.


도저히 운동이 잘 안 풀리면 나는 그냥 스트레칭존이나 유산소존으로 간다. 폼롤러 뽕을 하루 만에 뽑겠다는 기세로 몸을 풀어대면서, 혹은 부모의 원수를 갚으러 나갈 것 같은 기세(=티비를 보지 않고 유산소를 한다는 뜻)로 폭풍 유산소를 하면서 생각한다. 오늘은 회복 운동을 하는 날이야!


헬스를 막 시작해서 근육의 분리도 미친 몸짱을 꿈꾸는 당신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고강도만 고집하다가 한 번이라도 다치고 아파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때로는 물러나서 다음을 도모해야 한다. 언제나 나아갈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회복운동은 그런 거다. 평소에 고강도 운동할 시간도 모자라 등한시하던 스트레칭, 유산소를 잔뜩 해주면서 다음의 고강도 운동을 위해 컨디션을 다져주는 것.


당신은 비록 오늘 고강도의 운동은 이루지 못했지만, 오늘의 운동이 통째로 '망한 날'은 아니다. 포기가 아니라 나중을 기약하며 마음을 독하게 다지는 이른바 '와신상담의 날'이랄까. 가끔은 운동, 오늘은 이쯤 포기해도 된다. 오늘을 갈무리해서 내일 돌아오자. 내일 한 번 불태워 보자.


어, 그런데 맨날 갈무리만 하면 좀 곤란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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