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말기 아빠와의 이야기
올봄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아흔을 훌쩍 넘긴 외할머니는 요양병원에 오래 계셨다. 총 5년을 계셨을까... 그중 1년 반 정도는 의식이 없으신 채였다.
처음에 의사가 외할머니께 호흡기 다는 문제로 엄마께 여쭤봤을 때, 엄마는 "연명치료는 안 하겠다"라고 도저히 말씀하실 수 없으셨다고 훗날 기억하셨다. 그러나 종내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셨다. 한번 호흡기를 달기로 결정한 이후에는, 숨을 거둘 때까지 그 환자의 호흡기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식도 없이 하루 종일 병상에 누워 목에 꽂은 호스로 영양을 섭취하는 이 환자는 과연 살아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인가. 그 고통스러움을 말로 표현하지도 못한 채, 누워서 죽음만을 기다리는 그 시간은 얼마나 지난하고 참혹했을까. 그것이 엄마가 후회했던 점이었다.
그리하여 외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엄마와 아빠는 자식들 앞에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나중에 연명치료는 받지 않을 것이다. 보건소에 가서 미리 연명치료 거부서 동의서를 쓸 것이다"라고.
그리고 그 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왔다.
지난주, 교통약자 바우처 택시를 이용할 수 있게 된 아빠와 엄마, 두 분이 처음 다녀온 곳은 바로 보건소였다.
그곳에서 나란히 '훗날 연명치료는 받지 않겠다'라는 내용의 동의서를 작성하셨다고 한다.
두 분이 함께 보건소를 다녀오셨다는 얘기를 그날 저녁 전화통화로 듣고 얼핏 짐작은 했지만,
오늘 언니로부터 정확하게 그 사실을 전달받았다.
예상했던 일임에도 왈칵 눈물이 났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연명치료가 필요해도 받지 않겠다'라는 동의서를 스스로 서명하는 느낌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눈물과 함께 떠오른 생각은 '난 아직 아빠를 보낼 준비가 안 됐는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준비를 다 마치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이가 과연 누가 있을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더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삼켰다.
오전엔 두 분이 좋아하시는 간장게장을 고향집에 주문해 드렸다.
남은 시간 더 힘을 내야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더 많이 웃고, 더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드려야지.
그리하여 우리 아빠 지난한 고통 없이 즐겁게 하늘나라 소풍 떠나실 수 있게 해 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