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뇌종양(교모세포종 4기)으로 긴급 수술을 받으신 아빠는 최근 6주간의 항암/방사선 치료를 마치셨다. 정확하게 그날은 6월 17일이었다.
수술 직전 왼쪽 편마비로 아예 혼자선 거동이 불가능했던 아빠는, 수술 직후엔 지팡이에 의존해 조심조심 걸으실 정도로 호전되셨다.
하지만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욕실에서 넘어지시길 여러 번.
예전의 암수술로 대장, 신장 한 개가 없으신지라 화장실도 자주 가셔야 했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아빠의 잠자리를 지켰는데, 한 시간에 한번씩 화장실을 가시는 터라 그날 당번인 가족은 밤을 하얗게 새야만 했다. 그러고도, 아빠가 부디 넘어지지 않으시기만을 간절히 바라야 했다.
하루는 아빠가 침대에서 대변 실수를 하셨다. 그런데 그런 걸 인지도 못하셔서, 팔로 기어서 침대에서 내려오시다가 안방 침대 이불이 온통 엉망이 됐다.
아빠는 "이래가지곤 요양원에서도 나를 안 받아주겠다"며 엄마와 함께 우셨다고 했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가는 일은 고맙게도 자영업을 하는 제부가 맡아주었다.
6주간 매주 5일 평일 일정한 시간에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아빠 치료를 기다렸다가, 다시 모시고 집으로 오는 일을 반복했다.
친자식도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고맙고, 고맙고, 정말 고맙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 지팡이를 짚고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나가셨던 아빠는, 어느새 휠체어가 필요한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휠체어를 타고 몇 주간 방사선 치료를 힘겹게 받으셨다.
어느날 밤, 화장실에 가시려던 아빠와, 그런 아빠를 부축하던 엄마가 두분이서 동시에 일직선으로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그 와중에도 엄마는, 거실 멀티탭에 아빠 머리가 닿을까봐 본인 손으로 아빠 머리를 바치셨다. 그러다 본인 손을 살짝 다치기도. 서글픈데, 두분 넘어지신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해서 참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상태가 워낙 안 좋아지자 방사선 담당 원장님이 스테로이드를 처방해주셨다.
그리고 며칠 뒤부터 아빠의 상태는 날로 호전되어갔다.
휠체어가 다시 지팡이로 바뀌었고, 며칠 뒤 지팡이마저 필요 없어졌다. 휠체어를 타고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가다가, 걸어서 가니 방사선 치료 담당자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물론 스테로이드 영향이 크겠지만, 스테로이드의 영향만이라고 보기엔 상태가 이전보다 훨씬 많이 좋아지셨다.
방서선과 원장님은 정기 진료 때
아빠의 피검사 백혈구 수치가 젊은 사람의 수치가 나온다고 했다.
보통 방사선 4,5주차 때는 다들 휠체어를 타고 힘들어한다던데 아빠를 보시곤 본인도 너무 놀라울 정도로 경과가 좋다고 하셨다.
아빠는 기분이 좋아서 의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벌떡 일어나셨다고 한다.
살려고 하는 아빠의 의지, 틈틈이 운동하고 좋은 음식을 열심히 드신 아빠의 간절함이 스테로이드라는 지렛대를 밟고 놀라운 효과를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다.
여전히 밤에 완전히 통잠은 못 주무시지만, 절반은 주무시고 남은 절반은 운동을 하신다고 했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아빠의 의지는 그렇게 강렬했다.
방사선 치료가 끝난 지금, 아빠는 스테로이드를 줄여가고 있다.
아직까지는 변함없이 건강하시다.
가까운 곳에 사는 다른 가족들에게 오늘은 맛있는 밥을 한턱 쏘신다고 한다.
멀리 있는 나에게는, 맛있는 걸 사먹으라며 10만원을 엄마가 이체해 주셨다.
교모세포종 4기는 보통 수술 안 하면 남은 살 날이 3개월, 수술하면 6개월, 항암/방사선 치료까지 받으면 1년으로 알려져있고, 100% 재발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빠의 경우 고령인데다, 과거 여러 번의 암수술을 받으신 적이 있어서, 1년보다 기대여명이 짧을 거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하지만 지금 아빠의 모습을 보면, 어쩌면 1년은 아닐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이번 여름이 아빠의 생 마지막 여름은 아닐거라 믿게 된다.
교모세포종 4기의 경우 5년 생존률이 7%라고 한다.
어쩌면 아빠가 그 7%에 해당되는 건 아닐까,
기적은 과연 존재할까.
53년생인 우리 아빠는 앞으로 과연 몇번의 여름을 더 맞이할까.
기적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