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해

아빠의 악성 뇌종양 이야기

by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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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좋은 직장을 얻고 적지 않은 월급을 받고 있지만, 부모님께 매달 생활비를 드리지는 못했다.

1남 3녀 모두 좋은 직장을 얻었고 성실한 직장인이 되었지만, 부모님께 매달 생활비를 드리지는 못했다. 치솟는 집값, 매일 뛰는 물가 속에 모두 아등바등 살아가는 착실한 직장인이 되었을 뿐이다.

그게 마음에 걸려 생신 때나 명절에 드리는 용돈 외에도, 고향에 부모님을 뵈러 갈 때면, 마트에서 계산은 꼭 내가 하려 애썼다. ‘애썼다’는 표현을 쓴 것은, 엄마가 한사코 그걸 막으려 하셨기 때문이다. 그것 얼마나 한다고...


아빠의 악성 뇌종양 발병 전의 이야기다.

한날은 부모님과 집 앞 횟집을 간 뒤, 살 게 있으시다 하셔서 같이 마트로 향했다.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꼭 필요한 것들만 담으시려는 부모님의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기는 한데...”라고 하시면서도 쉽사리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지 못하셨다.

필요하거나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큰 고민 없이 인터넷 결제를 하는 내 모습이 떠올라 왜 그리 야속하던지...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엄마, 나 신세계 상품권이 있어요. 이마트에서 쓸 수 있는 10만원어치 상품권이고 오늘은 이걸로 계산하면 되니 필요한 거 다 담으세요.”

엄마는 한두 번 “그건 네가 다음에 써라”라고 만류하셨지만, 계속되는 둘째 딸의 권유를 결국 못 이기는 첫 받아들이셨다.

몸에 좋은 그래놀라 제품을 장바구니에 담고 엄마가 좋아하는 스파게티 면도 담았다.


하이라이트는 아이스크림 코너였다. 아이스크림을 지금도 좋아하셔서 마트나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 사둔 아이스크림을 냉동실 가득 쟁여놓고 하루 두 개씩 드시는 아빠도 신이 나셨다.

티코와 투게더, 아빠가 어린 시절 사주셨던 엑설런트에 빵빠레까지 아이스크림을 잔뜩 담았다.

계산을 마치고 큰 봉투에 담은 물건을 담아 집으로 향했다.


아이스크림이 잔뜩 든 봉투를 어깨 뒤로 둘러메고 길을 걷는 아빠의 뒷모습이 그날따라 유난히 흥겹게 느껴졌다. 그 모습이 왜 그리 보기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프게 느껴지던지.

매달 꾸준히 용돈조차 드리지 못하는 둘째 딸이 사드린 아이스크림 한 봉지에 룰루랄라 기분 좋게 걸으시던 아빠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제는 얼마나 많은 아이스크림을 앞으로 드실 수 있으실까.

수술 후 입맛 사라진 날이 많은 아빠는 그 좋아하시던 아이스크림도 이제 예전만큼 드시질 못하신다.

다음번에 뵈러 가면 그래도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냉동실 가득 채워 넣어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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