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 - 아빠의 악성 뇌종양 이야기 4

by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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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경상도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하기 쑥스러운 말이다.


사투리가 점차 옅어지고 있는 요즘 MZ 세대는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와 같은 80년대생을 포함한 그 이전 세대까지는

대부분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왜냐하면 경상도 사투리로는 "사랑한데이"가 돼야 하는데,

TV 인기 드라마 속 잘생긴 남자 주인공들이 속삭이는 "사랑해" "사랑해요"라는 세련된 표현과는 달리 어딘가 촌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초등학생 시절 나는 훗날 미래의 배우자 상으로 '서울 남자'를 꼽기도 했을 정도이다.

이유는 단 하나,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그 꿈은 성공했다.


이야기가 잠시 딴쪽으로 샜지만,

아빠가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기 몇년 전부터,

부모님께 "사랑해요"라는 표현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끄러움과 어색함 때문에, 주로 카카오톡으로 그 말을 전했는데,

최초로 그 말씀을 드렸을 때 아빠의 반응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는 문자가 더 편했던 시절이라,

아빠와 주고받은 대화 끝에 "아빠 사랑해요"라고 보냈는데,

평소와 다른 둘째딸의 펀치(?)에 아빠는 전화를 바로 걸어오셨다.

그리고 물으셨다.


"니 무슨 일 있나"라고.


그 정도로 우리 태생부터 경상도인들에겐 낯선 말,

"사랑해요" 라는 말.


아빠가 올 봄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고,

모든 치료를 하더라도 기대여명이 1년도 채 되지 않을 거라는 진단을 받은 후

내 마음은 더 다급해졌다.


아빠가 멀리 소풍을 떠나시기 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더 자주 해드려야지, 라고.


아빠가 방사선 치료를 받는 기간 2주 정도 집에 머물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 다음에 아빠를 꼬옥 껴안으며 "많이 사랑해요"라고 말씀 드리는 것이었다.


처음엔 어색해하시던 아빠,

"사랑한다"는 둘째딸의 기습고백에 "응" 하시곤 마셨다.


하지만 질 수 없는 나는 곧장 "아빠는요?"라고 되물었고

아빠는 "나도~" 정도로 말을 얼버무리곤 하셨다.


70여년을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로 살아온 이 사나이에겐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 루틴을 계속해 나갔다.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아빠는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어갔다.


며칠 정도나 지났을까.

"아빠, oo이가 많이 사랑해요."라고 하니

"아빠도 oo이 사랑해"라고 답을 하셨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도약을 꿈꾼 나.

"엄마는요?"

라고 여쭈었다.

그랬더니 "엄마도 사랑해"라고 답변하신 아빠.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시던 엄마가 놀란 토끼눈이 되어 쳐다보셨다.

그러곤 말씀하셨다.

아빠로부터 처음 듣는 말이라고.

(엄마 역시 경상도 여자이다.)


그 다음부턴 쑥스러울 것도, 어색할 것도 없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서로를 꼬옥 껴안으며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는 것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었다.


사랑한다면, 충분히 표현하도록 하자.

말하지 않으면,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리하여 더 사랑하도록 하자.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내일도 모레도 더 사랑하고, 서로에게 말하기로 하자.


"사랑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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