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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현 Feb 18. 2021

딸 생일은 공휴일

강원도로 튀어!

오늘은 열 번째 맞이하는 딸의 생일이다.

하루를 온전히 가족과 보내기 위해

어제는 모처럼 야근을 했다.


홈스쿨을 하면서 우리 가족의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생일을

공휴일로 여긴다는 점이다.


4명 중 누구라도 생일을 맞으면

그 날은 지진, 해일 등의 자연재해가

아니라면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보내야 한다.


생일을 맞는다고 해서 뭐 특별한

음식을 먹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을 내줄 뿐이다.

통상 미역국을 끓여서

생일상을 차리는데 그것도 없다.


우리 가족은 본래 아침을

잘 먹지도 않고 미역국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여지껏 실컷 먹었고

앞으로도 먹을 날이 많기에

그냥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아이들이 자기 생일을 얼마나

기다리는지, 자랑스러워하는지를

두 딸의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된다.


아이들은 어떤 숫자를 선택할 때

자기가 태어난 달이나 날을 고르고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선택하는 것도

자기 생일을 기준에 둔다.


어제는 큰 딸이 가족들에게 선포한다.

"오늘은 다들 깨끗이 목욕하고 자요.

내일 내 생일을 멋진 모습으로

함께 보내야 하니까."


이쯤 되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도가 지나치지 않으면

아빠로서 그냥 허용하려고 한다.

그것이 아이 인생을 좌우하는

자존감이라고 생각해서다.

나는 오늘 아침에 샤워를 하려고 한다.


미안하다, 딸아.

아빠가 일하느라 지난밤에는 그냥 잤구나.


독재자들은 자기 생일을 공휴일로 삼고,

위인들의 탄생일을 맞아

큰 행사를 벌인다.


강남역 지하철을 지날 때면

팬들이 아이돌 스타를 위해

LED 전광판에 생일 축하 광고를

한 달 정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 딸은 나에게 독재자는 물론이고

세상의 어떤 위인, 아이돌보다

소중하다. 다른 가족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아이돌 광고를 위해

돈을 대지만 정작 자기 생일에는

그런 대접을 받기란 불가능하다.

나는 이 점이 안타깝고 슬프다.


부모 생일도 기억 못 하면서

아이돌 스타 생일을 챙기냐고

자녀를 비난하기 전에 내 아이 생일은

제대로 챙겨봤는지 부모들이

돌아봤으면 좋겠다.


오늘 딸의 생일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많아서

참 기쁘고 감사하다.

지난 1월 20일 강원도로 왔는데

1월 19일까지 경기도민이었던

우리 가족에게도 재난지원금

40만 원이 생겼다.


10만 원은 딸이 좋아하는 전집을

개똥이네 매장에서 쓰고

우리 가족이 다 함께 미용실에 가서

펌을 할 생각이다. 그리고 딸이

좋아하는 보리굴비를 먹으러 간다.

그리고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한 장 찍으려고 한다.


새벽, 10년 전 딸의 출생을 기다린

마음처럼 딸과 하루 종일 보낼

오늘이 설렌다.


예은아, 생일 축하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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