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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현 Mar 03. 2021

출근 종이 땡땡땡!

강원도로 튀어!

강원도로 이사 왔어도

나의 수입활동은 서울에서 이뤄진다.

매주 화요일은 새벽 6시에

무궁화호 열차로 출근하는 날이다.


화요일은 고정된 촬영 스케줄과

미팅이 있는 날인데 출연자의 사정상

오늘 수요일에 촬영을 하게 되었다.


평소 몰아쳐서 일하길 좋아하는

나로서는 1회 차 촬영을 위해

떠나는 출장길이 반가울 리 없었다.

왕복 2시간의 적막한 기차 안에서의

여행이 심심하기도 했다.


평소와는 달리 좀 여유롭게 일어난

나는 큰딸에게 제안을 했다.


"오늘 아빠 일하는데 따라가지 않을래?"


또래 아이들은 개학해서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과

분주한 시간을 보낼 수요일이다.


홈스쿨을 하는 딸에겐 그저

보통의 하루였기 때문일까.


내 말을 듣자마자 아이는

가방에 기차에서 읽을 책

2권을 담는다. 하나는

<책벌레들의 책 없는 여름방학>

그리고 다른 하나는 <햄릿>이다.


한 자리 예약해놨던 내 옆자리에

딸을 위한 어린이 좌석을

예매하고 아내가 바래다준 역에서

우리는 승강장으로 뛰어간다.

난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타는 것을 좋아한다.


딸은 햄릿을 읽다 말고

창밖 풍경에 시선을 돌린다.

출근길의 풍경

1시간 20분을 달려 도착한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각자의 화장실에 다녀온 딸과 나는

선릉으로 향하

분당선 지하철에 올라탄다.


출근시간이 한참 지나서

오랫동안 기다리는 동안

딸이 묻는다.

"왜 열차가 출발을 안 해요?"


아, 기다리는 동안 여러 가지

공부를 할 수 있겠구나 싶다.

"지금은 열차 안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좀 기다렸다가 승객이

더 탈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궁금해진 딸이 묻는다.

"왜 기다려요?"

"뒤에 오는 차가 없기 때문이지.

반대로 다음 열차가 계속 온다면

열차는 출발해야겠지."


내가 수학 퀴즈를 낸다.

"승객이 1000원을 내고

열차를 타는데 10명밖에

안 탄다면 총얼마로 열차는 달릴까?"


딸이 아주 쉽다는 듯 대답한다.

"만원이요."


역시. 산수는 돈으로 배우는 게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다.

아직 열차가 출발 안 했기에

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제를 주었다.


"문과 문 사이의 좌석수를 세어볼래?"


딸은 눈대중으로 훑으며 좌석수를 센다.

"8자리요."


"한 줄에 8자리가 4개가 있고

노약자석까지 포함하면 한 35자리가 있어.

똑같은 자리가 맞은편에도 있으니

열차 한 칸에 자리는 몇 개지?

"70개요."


딸과 나는 지하철 요금과 좌석에 관한

계산으로 산수 공부를 했다.

지하철 좌석 8자리에 걸려있는 손잡이는 10개다.

아마도 지하철을 설계한 사람은

앉아있는 사람보다 서 있는 사람이 더 많을 것으로

예상했고 한 열차에 많이 탄다면 대략 1000명,

평균 500~600명이 탈 것을 계산했다.


65세 이상의 승객에게는 요금을 받지 않는다는

대화까지 했으니 지하철에서 과목으로 치자면

산수, 사회, 경제 등을 배웠다.

평소라면 무료했던 열차이동시간이

딸 덕분에 문제를 내고 푸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어느새 지하철은 문이 닫히고 목적지인

선릉역에 도착했다.

장비를 담은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중국집으로 향한다.

얼마 후면 각 건물에서 쏟아져

나올 직장인들을 대비해

우리는 첫 손님이 된다.


"짬뽕 하나, 마파두부밥 하나요."


딸과 중국 요릿집에 가면

종업원은 늘 내 자리에

짬뽕을 놓으려 한다.

"아니요, 제가 아니라

딸이 먹을 거예요."


딸의 짬뽕 경력은 세 살부터니

올해로 벌써 7년째다.

이제는 젓가락으로

국물을 적당히 적신

면발을 후루룩 잘도 먹는다.

짬뽕을 좋아하는 딸

우리 부녀가 다 먹고 나니 본격적인 점심시간이라

빈자리가 어느덧 만석이 되었다.

분주한 계산대를 떠나 우리는

코엑스로 걸어갔다.


책을 좋아하는 딸과 함께

산책해서 도착한 곳은 별무리 도서관.

딸과 별무리 도서관에서 점심시간

주로 인증사진만 찍고 가는 이 곳에서

우리는 각자 원하는 책을 골라 30분 간 읽었다.

나는 인테리어 잡지, 딸은 동화책 여러 권.

딸은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던 날>을 읽고

슬펐다고 했다. 걸어오며 추웠다는 딸을

위해 나는 한 정거장을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한 회차 분의 촬영은 준비와 정리까지

한 시간 안에 끝났다.

열심히 일했으니 다시

강원도로 가야겠지.


지하철역으로 들어선 우리 중

내가 "아차! 선물을 깜박했네."


출근길에 엄마 선물로 꽃을 사 가자던

내 제안에 기뻐하던 딸은

내게 그걸 까먹었냐는 원망의

눈빛을 보낸다.


우리는 동시에 뛴다.

열차 시간이 촉박하지만

엄마를 위해 장미 한 송이를

고르는 딸은 신중하다.

놓치면 다음 차를 타면 되지 뭐.

사실 너도 나를 닮아

아슬아슬하게 타는 걸 좋아하는구나.


엄마 선물인 장미꽃을 들고 선 딸

장미꽃을 들고 지하철을 기다리니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며 묻는다.


"얘야, 오늘 입학했니?"

"오늘 누구 결혼식인가...?"


무슨 날이어야만 꽃을 선물하는

나를 비롯한 어른들의

생각에 딸은 의아해했다.

오늘은 아빠 따라나선  날.

그냥 엄마에게 꽃을 주고 싶은 날.


돌아오는 열차는 더 빠르다.

노을 진 들판을 바라보며

딸은 시상이 떠오르는 듯하다.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옆자리에 가만히 앉아 독서하며

간간히 딸의 옆모습을 찍었다.

퇴근길 열차에서 독서하다 시상이 떠오른 딸

내가 예상한 시가 아니라 풍경을 관찰한 내용이다.

작가의 허락을 받아 옮겨 적는다.


기차 타고 가는 풍경

기차 타고 가는 풍경


산이 보인다.

풍경을 보는 내내 다리가 뜨겁다.(히터 온도가 높아서)

지나갈 때 가끔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거기에는 작은 집들도 많다.

무덤도 보인다.

산에는 깎인 부분도 보인다.

터널은 아무것도 안 보여 아쉽다.

덥긴 하지만 좋다.

기와집이 보인다.

이 기차를 타기 전에 호떡 먹고

엄마한테 드릴 꽃도 샀다.

빨간빛으로 보이는 나무도 있다.

밭이 보인다.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멋있다.

어떤 밭은 고춧가루처럼 빨간 밭도 있었다.

어떤 밭은 물이 고여 있었다.

저 멀리 산도 보였다.


주 1회 서울 출장인데

이번 주는 2번이라 힘들 거 같았지만

딸과 함께 하니 행복한 하루였다.


어느새 우리는 종착지인

우리 집 강원도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엄마와 동생을

만난 딸의 얼굴은 아이가 들고 있던

장미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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