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로 튀어!
나는 1981년 생이다.
연도별 인구수로 보자면
5년 전과 5년 후
총 10년을 통틀어
가장 많은 인구수에 속해있다.
88만 명이다.
한 살 위인 1980년 생은 86만 명,
김지영과 동갑내기인
82년 생은 85만 명이다.
그 많던 81년 생은 다 어디로 갔을까.
최루탄 향기 가득했던
현대사의 격동기인 1980년도에
부모 세대는 부부 관계가
돈독했음에 틀림없다.
뭐, 전두환 씨의 3S 정책의
한 분야가 적용했을 수도 있고.
나는 수능시험을 칠 때
응시자 100만 명에 육박하는
입시경쟁시대이기도 했다.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로 불리던 시절,
6학년 때부터 나는 고교 입시를 준비했다.
200문항 중 10개 이상을 틀리면
고교 재수를 해야 하는 학교에 입학했다.
나름 중학 시절 반에서 1등도 곧잘 했는데
잘하는 아이들을 모아놓으니
성적은 중하위권이었다.
작은 성취라도 맛볼 기회가 없었고
열세 살 때부터 이어오던 입시 경쟁에
이미 지친 터라 고교 3년 간은
공부하기보다 놀기 바빴다.
명문고에서 그냥저냥 공부하다가
수도권 대학교에 입학했다.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하기 어렵다는데
감사하게도 많은 급여는 아니지만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도 했었다.
당시 다니던 직장의 급여로는
네 식구가 살기가 빠듯해 휴일에는
대치동 영어학원에서 동영상 촬영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한 달 수강료를 보니 아이가 둘이면
대략 학원 보내는 사람들의
수입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학원비만 우리 가족의 생활비 전부였다.
강남 학부모들이 기꺼이 그 돈을 냈기에
당시 내가 알바라도 할 수 있었으니
감사해야겠지만.
몇 개월 동안 대치동에 머물면서
궁금한 점이 생겼다.
지금 청소년 인구수는
우리 세대보다 절반밖에
안 되는데 왜 지금도 대학 가기란
이토록 어려운 걸까?
그 어려운 일을 해내기 위해
부모들은 학원비를 댄다.
사교육은 사적인 교육이 아닌
전적인 교육이 되어버렸다.
노래방 도우미란 직업도
자녀 학원비를 대기 위해
시작된 것이란 설도 있다.
대전 엑스포 꿈돌이에게
민망할 따름이다.
(도우미는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행사를 안내하는 요원을 두고 생긴 단어)
얼마 전 네이버 카페에 영어학원 원장을
한다는 엄마가 8학군 중학교 영어시험
문제를 올린 적이 있다.
문제를 보고 느낀 점은
읽고서 푸는 것이 아니라는 점.
이 문제를 풀려면
철저히 정답 맞히는 기계가
되어야 한다는 점.
원서만 많이 읽으면 풀 수 있는
문제라고 해명하기엔
아이들이 공부할 과목이 많다.
그리고 이 문제를 맞혔다한들,
영어로 배우고, 일하고
소통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까.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이
이런 핑계로 안 한다지만
정말 꼭 따져볼 건 따져보자.
나는 사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영화감독의 꿈을 포기하고
월 80만 원의 급여를 받으며
나는 1년 동안 영국문화원에서
천만 원을 썼다.
덕분에 지금은 세계 어딜 가더라도
영어로 말하는 게 두렵지 않다.
잘 배운 것도 있겠지만 힘들게
벌어서 쓴 학원비가 아깝지 않으려면
나는 영어를 잘해야 됐다.
교육에 시간과 돈을 들이면
웬만하여서 결과물이 나쁘지 않다.
그런데, 지금의 대부분의 사교육은
그렇지 않다. 결과물이 나쁘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돈 벌어
학원 보내기에 여념이 없다.
나도 어중간하게 돈이 있다면
학원에 보냈을 텐데.
포기했다.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재정이 부족한 아빠인 나는
사교육을 극히 개인적인
교육으로 관점을 바꿨다.
월, 수, 금 점심 먹고
두 딸과 나는 우리 셋 밖에 없는
공원의 풋살장과 코트에서
축구와 농구 수업을 한다.
수업이라기보다
공을 차고 자유투 던지는 정도다.
평일에 농구 공대에 공을 던지니
수업이나 자율학습을 제치고
소위 땡땡이로 불리는 일탈의
슛을 던지던 기억이
떠올라서 기분이 묘했다.
그러나 아빠가 있는 코트장은
땡땡이가 아니다.
엄연히 체력을 기르는 수업이다.
딸들은 키에 비해 한참 높은
골대를 향해 농구공을 던졌다.
힘도 요령도 부족해서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다음 날 어린이용 골대를 살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두었다.
2번째 자유투를 던질 때,
아이들은 머리 위에서
공을 던지는 내 폼을 따라 하는 대신
밑에서 아래로 공을 던졌다.
그러자 골이 들어갔다.
그물을 뚫고 내려오는 공을
보며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10번 먼저 넣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에서 3번째 날,
나는 아이들에게 지고 말았다.
진 경기에 대한 구차한 변명을 하자면
제자에게 져도 기쁜 것,
그것이 스승이자 부모의 마음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은
많은 아이들은 자유투 선 앞에
세운다. 기회는 1번뿐이니
골을 넣으라고 한다.
나름 신중하게 슛을 던졌으나
골인하지 못한 아이들, 청년들이
이생망이라고 절망한다.
그렇지 않다. 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다.
2번, 3번 던질 수 있다. 기회가 있다.
다른 사람의 슛 폼 따위 따라 하지 않아도 된다.
골대에 넣기만 하면 된다.
자기 만의 방식대로.
그래서 자유투이지 않은가.
프리드로우 선 앞에서
슛을 던지며 사교육에 대해
생각해봤다.
부모인 당신의 사교육은 어떠한가?
지극히 사적인가?
아니면 전적인가?
올 겨울에는 아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사교육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
나도, 아이들도 하고 싶은
사교육은 원주 오크밸리의
스키 강좌다.
지극히 사적이고,
대단히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