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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로 튀어!
13화
커피 블라인드 테스트
강원도로 튀어!
by
장영현
Mar 18. 2021
강원도에 이사 와서
아침 루틴 중 하나는
드립 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정식으로 드립 커피를 배운 적은
없지만 유튜브 채널 영상을 만들면서
눈동냥으로 배운 적이 있다.
영상편집을 위해 여러 번 봤으니
아예 없는 실력은 아니다.
혹시 필요한 분은 아래 링크로.
https://www.youtube.com/watch?v=4tOiObgp4Go
아보카도 TV 핸드드립 커피 통합편 created by 미라클스토리 장영현 감독
커피도 내릴 줄 알겠다,
이제 원두를 사러 가야지.
원주에서 유명한 커피전문점
<볼타>라는 카페가 있다.
250그램 원두를 사면 음료 한 잔을 주기에
우리 부부는 온라인 주문 대신 매장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원두를 사고 아내가 좋아하는
공짜
라떼
1잔을 건네주며
나는 생색을 냈었다.
탈모를 걱정하면서 이런 태도를
유지하다니. 나도 참 한심하다.
12,000원 원두 한 팩으로 일주일 동안
매일 맛있는 커피를 마시니
경제적으로 큰 이득을 보는 듯했다.
내가 주로 드립 커피를 먹던 선릉의 단골점
<커피 볶는 집>에서는 한 잔에 4000원
이다.
근방에선 가장 저렴하지만
친절하고 맛있는 드립 커피라 자부한다.
(이번 글은 왠지 대대적인 PPL)
그나마도 기분 낼 때만 마셨는데
편안한 공간에서 매일 아침 마시는
핸드드립 커피는 내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었다.
그러나 사람은 비교하면서
행복을 잃어버린다는 진리를
노브랜드 매장에서 배웠다.
어느 휴일 장을 보다가
노브랜드에서 커피 원두 1kg이
16,800원에 판매됨을 보고
사칙연산에 재능이 있는
나는 바로 원두 봉투를 집었다.
게다가 브라질 싱글 오리진.
아침마다 남미의 풍미를
단가로 치면 170원에 즐길 수 있으니
(나는 1잔당 원두 12그램을 사용한다)
용진이 형께 감사할 따름이다.
(클럽하우스에서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그분이 불러달라는 호칭으로)
<볼타> 커피에서 산 원두가
다 떨어진 봉투 안에 노브랜드에서
사온 원두를 담았다.
그리고 내려 마신 커피의 맛.
'참'이란 부사까지 덧붙일 순 없지만
괜찮았다.
나의 지질한 모습 때문에
원두 살 때마다 주던 서비스 음료를
마시지 못한 아내는 어느 날
이웃 여성들과 커피를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왔다.
원재료비 170원의 커피를 마시고 있던
나는 그들의 소비행태에 대해
조언을 빙자한 비판을 가했다.
테이크아웃 잔 사용의 탄소배출 등을
설명했지만 결국 내 기준에선
아내의 커피값이 아까운 것이었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바로
커피 블라인드 테스트.
노브랜드 원두로 내린 커피와
테라로사 드립백으로 내린 커피를
비교해 맛있는 것을 선택한다.
만일 응시자가 노브랜드를 선택하면
1개월 간 외부에서 커피 음료를
사서 먹지 못한다.
그리고 1개월 후에 다시
테스트를 실시한다.
그러나 응시자가 테라로사를 선택하면
(고가 브랜드를 맞추면)
외부에서 커피를 마셔도 되고
선물로 테라로사 드립백을 받는다.
준비하는 사람이나 응시하는 사람이나
피곤한 이 작업에 아내 친구 2명이
합세하여 흥행이 붙었다.
드디어 블라인드 테스트 당일.
남녀 또는 브랜드 경쟁구도로
비칠 수 있는 다소 살벌한(?) 분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와플과 제철과일인
딸기도 썰어놨다.
그러나 시험은 피할 수 없는 법.
종이컵 하단에 N이라고 표시한 쪽은
노브랜드(브라
질 싱글 오리진),
T라고 적은 잔에는 브라질 드립백이
담겨 있었다.
3명의 여성 응시자 앞에
각각 종이컵 2잔씩이 놓여 있다.
지켜보던 아이들은 엄연히
블라인드 테스트니 눈을 가리지
않냐고 항의했지만
종이컵 밑바닥을 볼 수 없는
응시자는 커피 브랜드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시험 주관자인
나는 거부했다.
더군다나 이 장르는
예능이 아니라 다큐다.
응시자들은 검은색 액체인 커피를
바라보고 향을 맡고 조심스레
입 안으로 넘기며 맛을 음미했다.
한 커피를 마시고 생수로 입 안을
헹구며 테스트는 엄중히 진행됐다.
결과는 1명 통과.
2명은 내가 노브랜드의
브라질 원두를 선택했다.
내 아내는 2명 중 1명이었다.
밖에서 구매하는 커피값 조금을
아끼려는 취지에서 시작된
테스트가 끝나자,
나는 긴장이 풀리고 5잔이나
커피를 내린 노동(?)으로
피곤해 잠시 낮잠을 잤다.
승리의 뿌듯함은 사라지고
시험 준비를 위해 구입한
드립백, 와플, 딸기 값을
생각하면 시험 본연의 취지를
달성하긴 커녕 더 많이 지출
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나란 남편,
참 지질하고 쪼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핑계로 금요일 오후 커피와 와플,
제철 과일을 함께 먹었다는
행복감이 밀려왔다.
시험에 떨어진 두 사람에게도
드립백이 지급됐다.
시험이 끝나고
너무 인색하지 말자고,
가끔 밖에서
커피 한 잔 사 마셔도 괜찮다는
생각의 전환을 했다.
더불어 싼 값에 산 원두도
정성스레 내리면 고가의 원두보다
맛있을 수 있다는 점도.
블라인드 테스트를 치른 지
며칠 후에 비어 있던 옆집에
이웃이 이사 왔다.
이사 선물로 콜롬비아 슈프리모
원두를 선물 받았다.
앗싸라비아! 콜롬비아!
조만간 2차 테스트를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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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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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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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홈플릭스 새로운 교육이 온다
저자
두 딸과 함께 강원도 원주에서 홈스쿨링을 하는 아빠입니다. 작가가 꿈인 딸을 위해 책쓰기를 시작했습니다. 가족과 세대가 서로 이해하는 책을 계속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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