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 하나가 필요했어요

강원도로 튀어!

by 장영현

왜 이사 갔어요?

그것도 하필 강원도에?


모처럼 통화하는 지인들의

질문에 나는 단순한 대답으로 시작한다.


"집이 필요했어요."


결혼 10년 차, 홈스쿨 3년 차.

아내와 두 딸들과 함께

머물던 수도권의 우리 집은

방 2개, 화장실 1개

20평의 20년 된 빌라였다.


10살이 된 큰딸과

8살이 된 작은딸에게는

자기 방이 필요했고


셋째 계획이 없더라도

우리 부부에겐 사적인 공간이

절실했다. 결론은 10평 넓은

쾌적한 집이 필요했다.

방 1개, 화장실 1개가

더 필요했다.


평생 월급 모아도

내 집 한 채 마련할 수 없다는

지역은 수도권에 해당한다.

그 땅을 벗어나면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고

그래서 강원도로 왔다.


홈스쿨을 하기 때문에

전원주택을 꿈꾸었지만

부모인 우리 부부도 배워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일과 중에서

가사에 쓰는 시간을 줄이려고

우리는 신축 아파트를 선택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

강원도 아파트도 꾸역꾸역 샀지만

결국 우리 집이 생겼다.

내 자리, 가족의 보금자리 하나가

절실히 필요했다.

은전 한 닢 얻은 사람처럼

우리 부부는 공동 명의의 집문서를 얻었다.


2년마다 이사 다니는 수도권

임차인들에 비해

우리 가정은 10년 동안 한 집에서 살았다.

10년 간 보증금 단 한 번 올린

인심 좋은 집주인을 만난 게 감사했다.


그러나 세입자는 눈치로 산다.

1층에 식당을 하는 주인 세대를 위해

집 앞에 주차를 해도 마음이

불안했고 아침에 일어나면

공용 도로의 빈자리를 찾아

주차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소위 알아서 기는 것이다.


세면대, 샤워기, 좌변기가

한 군데 있는 1개의 화장실에서

체취와 향내가 섞여 살아가던

우리 가족이었다.


강원도로 이사 와서

비로소 각각 내 자리가 생겼다.


내 주차자리,

안방의 비데 달린 나만의 좌변기.

아이들의 전용 욕조.


공기업 직원들과 공무원들의 불법 땅 투기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울분을

터트리는 이유는 내 자리 하나를

뺏겼다는 허탈감 때문이리라.

자, 이제 그 자리 돌려놓으시지.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을 듣던 세대지만

학생 수가 아무리 많아도

내 자리가 있었다.


때로 말썽을 피워 책상과 함께

복도로 밀려난 적은 있어도

내 자리가 있었다.


책상을 화장실 창고에 숨겨

몰래 땡땡이를 쳤지만

돌아와서는 내 자리에 앉았다.


자리 하나가 중요하다.

모 대기업에서 직원을

명퇴시키려고 책상을

엉뚱한 데 갖다 놓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1년은 버텨도 결국 제자리를

찾지 못한 직원은 사직서를 쓴다.

자리는 자존감이며

회사원의 전부다.


이사 와서 자기 침대 하나,

자기 방 하나를 얻게 된

딸들의 감탄을 보고 들으며

기쁘기도 했지만 참 미안했다.

진작 해줄 걸.


얼마 전 내가 쓴 첫 책을 싸인북으로

다량 주문한 지인이 있었다.

우체국 마감 시간을 얼마 두고 있지 않아서

급하게 내비를 켜고 외쳤다.

"우체국!"

"주변의 우체국을 검색합니다."


어라, 이상하다.

늘 보던 그 길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티맵이 날 안내한다.

진짜 산으로 가네.

아닌 걸 알지만

길치인 나는 내비를 의존할 수밖에 없다.


평소 가던 원주 기업도시 우체국이 아닌

지정면 우체국에 도착했다.


아무렴 어떤가.

택배만 부치면 됐지, 뭐.


오후 5시 55분에 우체국에 도착해

나는 택배 발송에 성공했다.

금요일 퇴근 준비하던 직원분, 죄송.


급한 용무를 마치고 나니

왠지 주변 커피 맛집을 들르고 싶었다.

티맵을 열어 "커피"라고 외친다.

근처 티맵 추천의 카페에 가서

원두를 사서 집으로 가고 싶었다.


2.7킬로, 나쁘지 않다.

시동을 걸고 나는 시골길을

창문을 연 채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달린다.


기분이 좋다.

그런데 카페는 보이지 않는다.

달리다 보니 소금산 출렁다리

입구까지 왔다.

밥집은 보이는데 그나마도

문을 닫았고 카페는 찾을 수 없다.


다시 티맵을 켠다.

알고 보니 내가 머물렀던

우체국 후방 300미터에

카페가 있었구나.

산이 카페와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구나.


아무렴 어떤가.

나는 또 3킬로미터를 돌아간다.

카페'였던' 자리에 밥집이 생겼다.


원두를 구하지 못하고

유류비를 썼다는 아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이 곳 간현 관광지도

참 힘들었겠다 싶었다.

내가 돈이 없지, 동정심이 없진 않다.


레일바이크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잠시 하늘을 봤다.


엉뚱한 우체국에 왔고,

카페를 못 찾았고,

원두를 못 샀으면 뭐 어떤가.

돌아갈 내 집 한 채가 있는데.


금융 정보상으로는

방 한 칸만 내 것이라 해도

내 집이 있다는 마음이

시간을 허비한 후에

노을을 바라보게 하는

마음의 여유를 주었다.

"도대체 뭐하다 왔어요?"


동네 우체국에 다녀오겠다며

나간 남편이 한참 뒤에

도착하자 아내는 성화를 냈다.


저녁식사를 차려놓고

내가 오길 아이들과

고픈 배를 참으며 기다렸던 모양이다.


노릿노릿한 구워진

삼겹살을 앞에 둔

우리 가족은

자리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허기진 위장에 음식이

채워지며 산다는 건

제자리를 찾는 과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음식은 위장에,

가족은 제 집에,

영혼은 제 몸에.


내 자리 하나 찾지 못해

영혼과 육신의 허기진 채

헤매는 이 땅의 영혼들,

특별히 가장들이 제자리를 찾길 소망했다.


그리고 그 소망을 무너뜨리려는

제자리를 넘어선

탐욕스러운 사람들도

갈 자리를 찾아가길 바란다.


우리 가족은 강원도로 튀어왔다.

튀고 싶어서 안달인 내가

노력해도 티도 안 나는 넓은 땅이다.


넓은 집, 넓은 땅에서

우리 가족을 맞을

스펙트럼 넓은 이야기들이

기대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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