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리여행자 똥씨 Oct 24. 2024

자유의 감옥

프리랜서로의 삶, 자유 vs 틀


나는 마음을 챙기고 돌보는 것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 의도로 살다 보니, 크고 작은 스트레스에 압도당하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고 어느 정도 자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 몇일 전 어느 날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침부터 스트레스와 불안이 밀려왔고, 이를 그저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다. 스트레스와 불안이 온몸과 마음을 가득 채운 듯했고, 그런 내 모습이 불편해 더 초조해졌다. 왜 갑자기 이렇게 불안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일과 관련된 불안과 스트레스였지만, 머리로는 그렇게 심각할 일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불안하고 스트레스받고 있었다.


스스로 '걱정할 필요 없어', '느긋하게 생각하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돼'라는 말을 되뇌었지만, 불안과 스트레스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체념했다. "오늘은 그냥 그런 날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이유 없이 기분이 엉망인 날도 있겠거니 하고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마음이 계속 불안하니 실수가 잦았다. 가방을 떨어뜨리고, 주차장에서 티켓을 의자 밑으로 흘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모두 일 중이라 전화할 수 없었고, 평소 기분 전환을 위해 듣던 노래마저 오늘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노래를 넘겼지만, 기분은 여전히 심란했다.


오늘은 운이 없나 보다, 그냥 기분이 안 좋은 날이라고 체념했지만, 적어도 기분을 없애려 애쓰지 않으니 그나마 마음이 조금 덜 힘들어졌다. 여전히 왜 이렇게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느끼는지 딱히 이해가 가지 않아 좀 답답했지만, 최소한 그 압박감과 스트레스와 싸우려고 하거나, 기분을 억지로 좋게 하려 하지 않으니 오히려 약간의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했다. 내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프리랜서의 삶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를 짓누르던 불안과 압박은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의 자유로운 세팅에서 오는 것 같다. 프리랜서는 자유롭다. 자유, 즉, 내가 스케줄을 짜고 일할 수 있는 날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겉으로는 축복이지만, 동시에 '지금 하는 행동이 나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무거운 부담감을 동반하고, '너는 스스로를 관리하지 못하면 실패할 수도 있다'는 압박이기도 하다. 쉬는 날과 일하는 날의 경계가 흐릿하다. 쉬는 날에도 보고서나 행정 업무를 처리할 수 있으니, 마음 한구석은 늘 무겁다. 일할 때든, 쉴 때든, 휴가 중이든,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언제나 무거운 압박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을 더 할 수도 있고, 스스로를 더 쉬게 할수도 있다. 나의 컨디션에 맞게 나를 어느 정도로 더 몰아부치고, 어느 정도로 쉬게 해줘야 하는지 끊임없이 스스로의 상태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스스로에게 어느 정도로 규율을 적용해야 할지 판단해야 한다.


고정된 틀 안에서 일하면, 때로는 일이 하기 싫어도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강제로 일을 해야 하므로, 일을 하기 싫은 마음도 그러려니 한다. 어짜피 일하러 가야 하니까. 하지만 내가 나의 스케줄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면, 일하기 싫을 때 그 마음과 싸워야 한다. 누가 항상 일하고 싶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고, 나를 다독여 일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프리랜서로 일하는 나에게는 '내가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 '일하기 싫은 마음' 이 자연스러운 마음이 위협적으로 다가오는거다.


어쨋든, 딱히 '답'은 없지만 (불안과 압박감은 없애고, 온전히 자유만을 누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답'), 적어도 내가 느끼는 불안과 압박감이 현대 사회와 프리랜서라는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인간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깨달으니, 그로 인해 덜 혼란스러웠다. 최소한 그 마음과 싸우지 않고 받아들이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유의 감옥

작년에 읽었던 책 'The Freedom Trap (저자: Craig Hassed)'이 떠오른다. 그 책에서 말하는 현대 사회의 무한한 자유와 많은 선택지가 오히려 불안과 우울을 야기한다고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가 때로는 감옥이 될 수 있으며, 그 감옥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끝없는 선택의 가능성은 우리를 압도한다. 무한한 옵션들이 주어진다는 것은 '네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그 말은 동시에 '네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네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위협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또한, 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우리는 결정에 압도된다. 물건을 사거나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할 때마다 나는 스트레스를 느낀다. 검색어를 넣는 순간 끝없는 정보의 바다에 휩싸여 길을 잃는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어디서 멈춰야 할지 알 수 없고,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이 생긴다. 그래서 결국 지쳐서 어느 순간 더 정보를 찾아 헤매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도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운동화가 다 닳아서 새로 사러 갔을 때, 다행히 나는 기준이 있었다. 특가 세일 상품 중에서만 고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3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데 애를 먹었다. 선택지가 제한적이라서 마음이 편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누리는 자유는 내게 큰 압박감과 자기 검열을 요구한다. 끝없는 선택의 가능성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관리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며, 혹시 놓치는 것이 없는지 불안해한다. 이 모든 것이 현대 사회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자유의 감옥'이다.


예전 부족 사회처럼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던 시대에는 지금처럼 자기 검열과 무한한 선택지에 대한 불안은 없었다. 물론 당시에는 자유롭게 삶을 선택하고 세팅하고 만들어나가는 것들의(외국으로 이주를 한다든지, 여러 직업을 시도한다든지, 다양한 사람들을 데이트하고, 내 짝지를 내가 고른다던지..) 한계는 존재했지만, 최소한 이러한 압박감은 덜했을 것이다.


자유 vs 틀

뭐가 더 좋고 나쁘고 말할 수는 감히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자유냐, 틀이냐. 무한한 자유를 주는 현대사회가 더 나은가, 자유가 없었던 부족 사회가 더 나은가. 다 장단점이 있었겠지/있겠지.


프리랜서로서의 자유로움이 주는 이점도 분명 있다. 나는 누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을 싫어하고, 자유를 선호하는 사람이다. 조직에서 일할 때는 구속감에 '더' 힘들어 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지금의 삶 (프리랜서 세팅)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자유가 압박과 불안을 동반하더라도, 그 자유는 여전히 소중하다. 양면의 감정이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면서도, 그와 동반되는 불안과 압박감은 불편하고.  


앞으로의 나의 과제는 이 자유를 누리면서, 그에 따르는 압박감과 불안감을 덜어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지금으로서 떠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현대사회와 내 일의 세팅이 제공하는 무한한 자유가 은근히 불러일으키는 불안감과 압박감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을 이해해주는 것 (‘인간적인 반응이야. 스트레스 받는 나를 비판하거나 쪼지마..’). 둘째, 나름의 구조와 기준을 세워 자유 속에서도 나를 안정시켜줄 나만의 안전한 틀을 만드는 것이다 (매번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들 줄이기 위해..). 자유에 휘둘리지 않게, 그 안에 나만의 틀과 기준을 만들기. 그리고 그 틀은 ‘자유’라는 티켓을 사용하여, 필요할 때마다 재평가하고, 수정해나가기 (너무 자주는 말고..).


이 방식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 아니면 다른 방법이 필요할지 계속 질문을 던지며 찾아가야겠다.


사는 건 매일 새롭고, 해결해야 할 과제와 모르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려니 해야지. 가끔은 ‘아,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겠어’ 하다가도, 다시 ‘사는 게 어렵고 항상 모르겠다’고 느끼곤 한다. 누군가 그랬다. ‘사는 게 너무 쉽게 느껴지고 모든 걸 다 알 것 같은 순간이 오히려 더 이상하고 위험한 거야.’ 모르고, 질문이 있는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이성을 강조하는 사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