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누르의 밤, 마음을 따라 걷다.

그저 그런 날에도, 마음은 자라고 있었다

by 이수연


사누르의 밤은 유난히 조용하다.

하지만 그날의 사누르는, 조금 달랐다.


잔잔한 파도 소리에 맞춰

촉촉한 비가 내리던 해변 산책로.

나는 우의를 하나 걸친 채,

발끝이 젖는 것도 잊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날의 밤공기는 심장을

말랑말랑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라이브공연이 한창인 레스토랑 사이를 걸을 때,

어디선가 낯익은 멜로디가 들려왔다.


발길을 멈추게 만든 곳은

해안길 중심의 중식 레스토랑.

추억의 아마겟돈의 주제곡,

‘I Don’t Want to Miss a Thing’


그녀의 촉촉한 음색에 이끌려

라이브 바 창밖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날 밤, 조용히 내리는 비를 맞으며

그 공연이 끝날 때까지

함께했다.


비는 머리 위로, 어깨 위로 천천히 흘렀고,

그녀의 목소리는 마음속 어딘가를 조용히 흔들었다.

지금도 그 밤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 음색, 그 바람, 그 비, 그 노래.

그리고 감사와 행복의 감정을 짙게 느꼈다.





그날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아주 오랫동안

감정을 ‘기록하지 않고’ 살았다는 걸.


이 여행의 어느 날부터였는지

매일 밤, 하루의 나의 감정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날 있었던 일과 함께

그날의 감정을 기록했고,

오래도록 그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메모 속의 난,

어떤 날은 괜찮았고,

어떤 날은 외로웠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울컥했다.


그 기록은

내가 나를 다시 믿게 해 준 근거였고,

내 삶을 내가 이끄는 훈련이 되어주었다.


그날 나는, 조용히 마음속에 적었다.

‘이 밤을, 잊지 않겠다고,

다음엔 꼭, 공연을 함께하며

오늘의 이 감사한 감정까지 보답하겠다고.’



시간이 한참 지나고 보니

별일 없는 하루였다.

그런데도 마음은

그날, 가장 단단히 자라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말없이 젖어든 그 밤처럼,

내 안의 무언가도 조용히 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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