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나를 감싸던 날의 기록
우붓에서도 더 깊은 곳.
정글과 논이 맞닿은 산속 마을,
하루에도 몇 번씩 안개가 피어오르는 그곳.
나는 아주 조용한 숙소에 머물렀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천천히 시작된 빗방울은 이내 본격적으로 쏟아졌고,
나는 문 밖 테라스에 앉아
그 소리를 온몸으로 느꼈다.
빗소리와 풀잎이 부딪히는 소리,
간간이 내게 다가오던 강아지 생명체의 숨결,
그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어릴 적 시골에서 맡았던 흙냄새가 떠올랐다.
축축하게 젖은 흙냄새, 비에 씻긴 산공기,
풀잎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의 냄새.
그 낯설지 않은 공기 속에서
마음속에 얽혀 있던 것들이 조용히 풀려나갔다.
빗방울이 내 어깨를 적셔도,
나는 우산을 쓰지 않았다.
그저 그대로 젖었다.
마음까지.
숙소에서 준비해준 따뜻한 아침 식사를 먹고,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 몸을 담갔다.
사방에서 떨어지는 빗줄기 사이,
내 숨소리만 또렷하게 들렸다.
특별한 건 없었지만,
이 하루는 어딘가 깊은 곳을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점심엔 정글 안쪽 고급 레스토랑에 들러
나를 위한 한 끼를 천천히 즐겼다.
누군가의 초대도, 특별한 기념일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식사’를.
별일 없이 흘러간 하루였지만,
내 안에선 많은 것이 바뀌고 있었다.
이날의 나는 더 이상
달라져야 한다고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이 하루를 충분히 살아냈다는 것으로
이미 충분했다.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조용한 자신감’ 같은 걸 느꼈다.
그날의 비는,
나를 조용히 안아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