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파동의 확신, 조용한 시작의 감각
바투르산에서 내려와 숙소에 도착한 건
오전 11시 무렵이었다.
잠은 거의 못 잤고 무릎은 욱신거렸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감정을 해소한 후 찾아오는 평온함.
묵직하지만 따뜻한 공기가 내 안에 가득 들어찼다.
숙소를 운영하는 현지인 부부는
아무 말 없이 아침을 차려주었다.
잘 익은 바나나 팬케이크와 오믈렛, 과일 몇 조각.
차림은 소박했지만 그 안엔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
작은 테라스에 앉아 아침을 먹으며,
나는 처음으로 진짜 ‘쉼’이란 걸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해내야 할 일도, 마주쳐야 할 사람도 없는
조용한 아침.
햇살은 나를 안아주듯 등을 감쌌고,
바람은 말없이 괜찮다고 속삭여주고 있었다.
오후에는 우붓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한 카페에 들렀다.
창가에 앉아 한참을 창밖만 바라보았다.
오토바이 몇 대가 골목을 느리게 지나가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들었다.
나무 그림자가 벽을 따라 흔들리는
그 단순한 풍경이
이상하리만치 깊게 마음에 스며들었다.
커피는 식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그 사실조차 잊을 만큼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괜찮았다.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잠시 놓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저녁은 숙소 근처 골목 어귀의
작은 와룽에서 먹었다.
현지인들로 가득 찬 작은 공간,
한국어가 한 마디도 들리지 않는 곳.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지만
그저 조용히 앉아, 하루의 끝을 보냈다.
그날 나는 어떤 결심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바꾸겠다고 다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분명히 달라진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하루 끝의 햇살처럼,
나도 조용히 다시 따뜻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