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도 나도 함께 성장하는 시간.
2015년 여름, 프리랜서가 아닌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서류에 파묻혀있던 시절. 20대의 끝자락. 내가 지금은 이 기관에서 이렇게 서류나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큰 일을 할 거라 자만했던 시절(대체 그 '큰 일'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수줍음 가득한 초등학교 5학년 친구가 아빠와 함께 치료실로 들어왔다.
아버님은 이제 막 신학교 공부를 시작하고 계셨고 주로 어머님의 수입으로 생활하시는 것 같았다. 관 내에서 진행되는 후원이 잘 연계가 된 편이어서 다행히 수업료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않고 주 2회의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주 2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짧은 시간이 아니다. 주 2회씩 1년을 만나면 적어도 1년에 70회 이상은 수업을 했다는 뜻이고 2년이라면 100회가 넘는 수업을 진행했다는 의미다. 중간에 주말과 공휴일이 끼어서 그 맥이 끊어지기도 하지만 모아 모아 보면 적은 횟수가 아니다.
당시 나는 아이들의 수업에 신경을 쓴다고는 했지만 해당 직장에서는 5년 차가 아닌 1년 차였고 막내였다. 서류, 실수 투성이인 연애를 하느라,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점검할 겨를이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경계선 지능 아이들의 수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치료사, 교사가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오류는 '교재'의 흐름에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진행하는 치료사에게 업무가 과중되다 보니 자료를 하나하나 만든다고는 만들었지만 만족할만한 퀄리티가 아니었다.
그 자료로 계속 덧붙여서 활용하고 덧붙여서 활용하다 보니 종결할 당시에는 파일이 터질듯하게 두툼해졌지만 그 안에 내용물의 퀄리티는 어떠했는지. 지금도 너무나 부끄럽다. 그렇다. 나는 당시에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에만 집중했던 치료사였다.
맞춤법은 왜 이렇게 맨날 틀리는 건지, 한글은 왜 이렇게 버벅거리며 읽는 건지, 방금 알려준 것인데도 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큰 숲을 바라보고 학습장애에 대한 논문 하나 제대로 보았더라면 그렇게 엉터리로 아이를 단정 짓지 않았을 텐데. 논문 주제도 경계선 지능 아이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나에게 오는 대상자에게는 이론도 증거기반의 치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2년을 수업하고 나는 이사를 가게 되었고 신기하게도 내가 출산을 앞두고 다시 지금 살고 있는 지역으로 다시 오고, 복귀를 하게 되었을 때 이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전 기관 바로 앞 기관으로 이직하긴 했지만.
작년 한 해는 직원으로 근무했을 때에 비하면 아무리 육아가 바빠도 수업 준비할 시간은 반드시 마련해두었고, 수업의 질을 높이는 게 가장 큰 목표였기 때문에, 나름 부끄러움 없이 수업을 진행해왔다. 물론. 작년의 수업자료도 5년 뒤에는 어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리고 코로나가 터지고, 중3이 된 친구는 올 한 해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이번 주에 만난 친구는 불과 10개월 만에 어른이 되어서 온 것 같았다. 그간에 있었던 고등학교 입시 준비, 그리고 여러 가지 고민들. 이야기를 나누며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나는 그때 왜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고 있었을까. 맞춤법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았을 텐데. 왜 조금 더 쉽게 어휘의 의미를 전달해주지 못했을까. 왜 나무라기만 했을까. 서류 업무는 회사를 위한 업무였는데, 아이를 위한 것에 나는 어떠한 것들을 쌓아온 걸까.
불과 5년 사이에 나의 환경도,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친구도, 세상도. 너무나 많이 바뀐 것 같았다. 5년 만에 본 것도 아니고, 5개월 만에 만난 건데. 참 주책이다.
서론이 굉장히 길었지만 경계선 지능, 느린 학습자 친구들은 초등학생 시기를 지나 청소년기를 지나면 똑같이 사춘기를 겪고 진로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자립'을 준비한다. 그런데 내가 본 경우는 느린 학습자 친구들이 어쩌면 더 가정환경, 특히 경제적인 부분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정치적인 색은 조금도 포함되지 않은 의견이다만, 부유한 가정환경 아이들은 유학도 가고 자신의 꿈을 향해 대학교도 입학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가정에서 방치되거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유일한 친구가 되는 경우도 많다. 사회에 나갔을 때에 타인과 적절한 대화 기술, 스마트폰으로 상대방과 적정선을 유지하며 연락하는 방법에 대해 배울 기회가 적었던 경우는 온라인 세상 속에의 적응에도 어려움을 보이게 된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느린 학습자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언어재활사로서의 자격도 힘이 있지만 더 그들을 포용하고 공교육 안에서 만나기 위한 자격증을 갖고 싶어졌다. 오랫동안 품어왔던 나의 꿈. 언제쯤 펼칠 수 있을까. 시작할 수 있을까. 아이들도 나도. 여전히 성장 중이다. 그런데 치료사는 함께 성장만 하는 것보다는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고민이 많아진 한 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