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육아는 엄마만의 숙제가 아니다.
그림책을 주제로 다루는 글을 쓸 때면 여전히 손에 식은 땀이 난다. 언어치료는 학위가 있지만 그림책 육아는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들, 책에서 배운 지식들, 그리고 이제 겨우 33개월차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림책이 이렇게 좋습니다'라고 알리고 싶다.
지난주 토요일에 언어치료사 선생님들과 함께 그림책 이야기를 함께 나눌 때에도 이렇게 말씀드렸다. "선생님들께서 먼저 그림책을 좋아하셔야 해요. 아이들에게 쇼호스트가 판매를 하듯이 그림책이 이렇게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주세요. 느껴지도록 전해주세요."
지금은 내가 그림책 육아를 하고 있기에 이런 말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20대 싱글 언어치료사였다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깊이 와닿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그림책은 그저, 언어발달을 촉진해준다고 알려주는 도구일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림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 중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책은 없다. 당시 동네에 방문판매를 하시던 분과 엄마가 친분이 깊었던 터라 구입했던 전집들. 엄마가 아빠 몰래 전집을 구매하고 아빠 눈치를 보던 기억이 오히려 선명하게 난다.
전집 중에서도 재미있게 읽었던 전집들도 꽤 있었다. 지금은 제목이 기억나지 않을 뿐. (없어진 출판사여서 이 곳에 기록하기는 그렇지만) 그 출판사의 전집들도 90년대에 나온 책이라 하기에 아까울 정도로 세련되고 내용도 재미있었다.
낱권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든 것은 온이가 8개월 무렵부터였고, 그때가 되어서야 내가 그림책을 선택해서 구매했다. 이전에는 근무하는 기관 예산 안에서 대충 출판사 브로셔만 훑어보고 구매하거나 인기 있는 전래동화 교재 정도만 보았으니까.
코로나가 이렇게 일상화가 되고 난 이후, 어쩌면 코로나는 그림책이 육아의 현장에 깊숙이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되었을 것 같다. 외출을 할 수 없으니 집에 머물러야 하고, 집에서 놀 수 있는 장난감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새로운 장난감을 구입하기엔 재정적인 부분이 마음에 걸리고, 재정이 넉넉하더라도 장난감은 금방 질린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다 알기에. 새로운 장난감을 매달 집에 사들이는 것도 부담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림책 육아는 특별한 법칙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데 엄마와 아빠의 노력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90년도, 2000년대 초반에 출판된 책들은 '엄마의 책 육아'라고 이야기하지만, 요즘은 '엄마와 아빠의 책 육아'라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엄마 혼자 그림책 육아를 해나가기엔 에너지가 부족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빠와 함께하는 그림책 육아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서 좌절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엄마든 아빠든 누군가가 나와 눈을 마주하고 나의 눈동자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한 때는 sns나 블로그 안에 그림책 활용 후기를 '멋지게' 남겨야만 할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듯 강요한 적도 있었고 온이에게도 한 컷을 남기기 위해 책 읽는 찰나를 찍으려고 책을 건네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림책 육아를 깊이 해보신 분들은 아실 것 같다. 그러한 연출 샷을 남기는 것이 오히려 책에 빠져있는 순간엔 더욱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책 육아, 책놀이, 독후활동.' 타이틀은 무언가 거창하지만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와 함께 책을 읽고 스토리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 길을 걷다가 책에서 본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책과 관련된 주제의 등장인물, 동물, 사물을 그리는 것, 만들어보는 것. 어떠한 활동이든 아이가 즐겁고 내가 즐겁다면 그 시간만으로도 가장 질 좋은 책놀이 수업이 될 것이다.
언어발달이 또래보다 늦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말이 느린 것 같아서, 집에서 어떻게 놀아주어야 할지 몰라서 등의 사유로 언어 상담 의뢰를 주시는 분들을 최근에 자주 만나게 된다. 머릿속으로는 '그럴 때는 그림책을 보여주세요.'라고 외치고 있지만, 그림책 육아에 대한 안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려야 할지 말문이 막히게 되기도 한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순간, 함께 그림을 보는 순간만큼은. 아이의 언어가 어떠한지 살펴보시기보다는 아이의 관심사와 몸짓, 발성, 단어 산출, 언어 행동에 관심을 기울여주셨으면 좋겠다. 나 또한 아이가 말이 빨리 트인 편은 아니었기에. 책을 읽어주는 순간이 오히려 아이의 언어발달을 살피게 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확진자 수가 또 늘어났다. 그리고 역시나 어린이집에서는 등원에 대한 안내 문자가 왔다. 전문가들이 예측했던 암울한 11월이 정말 현실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우울해진다. 엄마와 아빠의 마음 또한 시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갑작스럽고 얄궂고 어딘가에 원망의 화살을 쏘고 싶은 이 시기에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괴물이 등장할 때, 주인공이 눈물을 흘릴 때, 외로울 때. 감정이입을 하게 되면 어느 순간 나 또한 마음이 조금은 녹아내려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