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36개월, 다시 그림책!

'질문'보다는 '읽어'주세요.

by 말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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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봄, 100일도 되지 않은 아이를 친정 엄마에게 맡겨두고 중고 서점으로 도피하다시피 갔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분명 열 달동안 아이를 뱃속에 품으면서, 그리고 선배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울함이 올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해두었지만 겪어보니 정말 우울하더라고요. 도피처는 카페 혹은 서점이 전부였던 것 같아요. 코로나가 터지기 전이긴 했지만, 수유를 해야 하는 엄마의 신분으로 가까운 곳에서 갈 수 있는 최선의 공간이었어요.


그리고 2019년은 아이가 돌이 막 지나서 그림책에 관심을 함께 보이고, 그림책을 찾는 모습에 감격을 느껴서 그림책에 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좋아하는 작가님의 북토크도 가고, 동네 책방도 아기띠에 아이를 안고 택시를 타고 다녔어요. 생각해보면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그렇게 다닐 수 있었던 시간들이 정말 축복이었던것 같아요. 지금이라면 마스크를 쓴 채로 망설이고 있었을테니까요.




그 사이 아이도 자라고, 저는 일이 더 많아졌어요. 그림책을 읽는 시간이 생각해보니 아이가 두 돌 무렵이 피크를 찍었다면, 작년 하반기는 곡선이 하향선을 조금 탄 거지요.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그렇지 않을까요? 1년 365일 내내 일정한 시간에 그림책을 읽어주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워킹맘이든, 워킹대디든, 일을 쉬고 있는 상황이든지에 상관없이요.


그럴 때는 그냥 쉬었다가 다시 그림책을 읽어주세요. 저는 그랬거든요. 새로운 그림책을 구입해도 좋고, 주변 지인에게 물려 받아도 좋아요. 우리가 다이어트를 할 때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슬로건을 걸곤 하지만, 결국 오늘 시작하는 사람이 진짜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영어 공부도 그렇죠.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는거에요. 아이는 그림책 읽는 시간에 잠시 공백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더라구요. 어느새 같이 읽고 같이 눈을 마주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책을 펼치고 있어요.


그리고 36개월이 되면서 찾아온 변화 중 하나는, 이전에 읽었던 그림책들에 비해서 확실히 선택한 그림책의 글의 양이 많아졌다는 거예요. 보드북이나 사물 이름을 명명하는데 그친 그림책에서 이제는 인물의 감정이 드러나고 스토리가 펼쳐지기 시작하지요. 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에게 그림책을 가지고와요. 24개월 무렵에 <우리 아빠가 최고야> 그림책을 읽을 때도 그림책 글이 꽤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보다 더 많은 양의 글씨가 담긴 그림책도 서슴없이 가지고 온답니다.


또 하나의 변화는 그림책과 생활이 더욱 더 연관된다는 거예요. <택배상자> 책을 읽고 난 후에 집에 온 택배를 보면 '택배상자야!'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이건 상자가 아니야> 책 속의 토끼같이 상자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려고 하고요. <왜냐면>책에 나오는 물고기가 울어서 비가 온다고 이야기를 하며 비 오는 거리를 함께 걷곤 합니다. 아이에게도 그림책이 어느덧 하나의 생활이 되어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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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그림책은 '질문의 도구'는 아니랍니다. 그림책을 활용해서 언어능력이 향상되는 것은 너무나 맞는 이야기지만 엄마의 질문이 아이의 언어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아니니까요. <가나다는 맛있다> 그림책은 같은음절이 반복되면서 아이들이 한글도 익히고 다양한 의성어와 의태어를 익히기에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이 들어있어요.


"이거 무슨 글자라고 했지? 가!라고 했잖아, 가!"
"아니, 따!가 아니라, 싸! 라니까. 엄마 잘 봐봐! 혀를 내려야지!"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다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정말, '내가 혀를 올려서 /따/ 발음이 났구나. 이제는 고쳐야겠다. 책도 읽어봐야지.' 생각이 들까요?

감히 예측하기로는,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됩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단순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 순간의 분위기도 잘 기억하거든요. 그런 피드백을 들은 아이는 그림책을 재미있는 요소로 느끼지 않을거예요. 나의 지식이나 발음을 체크받게 되는 존재로 남게 될 수도 있지요.




우와, 여기 가! 구나! 그런데 감이 있네? 우와~맛있겠다! 주황색 감이야! 우리 온이도 감 먹어봤지? 맞아. 할머니가 주셨어. 감나무에 감이 왜 이런 표정일까? 간지럽나봐~! 곧 떨어지려나?
가가가~~는 간질간질~~~감!


이렇게 대화를 시작해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아이가 /가/ 발음을 정확하게 하지 않더라도, 그 순간은 재미있게 소리를 내는 시간으로 만들어주세요. 발음연습 시간이 아니니까요. 엄마, 아빠 또한 아이에게 어떠한 학습적인 자극을 줘야할지 고민하는 부담감이 덜어질 수 있을 거예요.



그림책을 많이 읽으면 이후에 읽기 발달에 큰 도움이 되요. 다양한 소리를 듣고, 글자를 접하고, 글자에 음가가 있다는 것 또한 자연스럽게 알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책이 재미있어야 하고, 한글 소리가 재미있어야 해요. 우리 또한 영어나 새로운 외국어를 배울 때 재미있어야 더 보고 싶어지는 것 처럼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질문해왔던 방식이 너무나 잘못되었다는 것 또한 아니에요. 엄마만의 육아 방식, 또 그림책을 읽어주는 방식이니까요. 죄책감을 드리기 보다는 저와 아이의 그림책 이야기, 그리고 언어치료 현장에서 느꼈던, 차마 자세히 전달드리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오늘은 살짝 기록해보았습니다.


저는 요즘 sns에 올라오는 수많은 책을 읽은 인증샷이 사실 막 반갑지만은 않더라구요. 이 사진을 통해 누군가는 죄책감을 갖지 않을까, 정말 많이 읽는게 좋은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생각들이 먼저 앞서요.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아이와 함께하는 추억이 된다면 그 책이 최고의 그림책이 아닐까요? 다 읽지 않고 반만 읽은 책이더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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