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보다 더 중요한 것.
대부분의 영유아기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그림책을 보여주는 이유는 언어발달을 촉진해주기 위함이다.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면 이후에 말이 빨리 트이고 한글도 빨리 익힐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나 역시 그러했다. 때로는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가 글자를 통으로 빨리 외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주변에서 전집을 권하는 이유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각 발달단계 별로 아이들이 잡아야 할 목표를 그림책을 통해 더 빨리 잡을 것만 같은 이야기들. 어느 날은 30개월이 된 아이와 함께 마트에 갔는데 학습지 업체에서 '세 살이면 이제 한글도 시작해야죠.'라고 말하며 풍선과 함께 전단지를 준 적도 있었다. 이론적인 근거를 묻고 싶었지만 소심하게 '네, 감사합니다.' 말하며 아이에게 풍선을 받아주었다.
온이에게 그림책 육아를 시작한지 거의 2년 반의 시간이 지난 것 같다. 그림책을 독학한 걸음마 단계의 초보 엄마로서도 아이로서도 서로의 자리에서 많이 성장한 시간들이었다.
돌이켜보면 아이는 앉혀놓고 그림책을 읽어주고, 내용을 확인하는 질문을 하고, 그림책에 등장한 사물의 이름을 물어보았을 때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아이가 선택한 그림책을 읽어주고 아이의 시선이 가는 곳에 함께 따라가주었을 때 더 그림책에 빠져들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그림책이 각 단계가 나뉘어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돌 이전 아이도 종이책을 볼 수도 있고 다섯살이 된 아이도 보드북을 볼 수도 있다. 아이가 일정 개월수가 차면 해당 단계의 그림책에 올라타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부모님들께서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현장에서도 부모님들께 가정에서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시간을 꼭 만들어주실 수 있도록 안내해드린다. 물론, 전쟁터같은 집안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림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아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학습적인 부분을 그림책으로 채우려는 것은 어쩌면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을 때 그 영양가만 빼고 먹는 것과 비슷한 모습인 것 같다. 그림책은 학습의 도구라기 보다는 엄마아빠와의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렇게나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알아가는 시간이다.
전집 또한 책장을 가득 매꾸어두면 좋은 점이 많다. 그리고 그림책을 선택하는데 드는 에너지도 덜 수 있고 어쩌면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동의 가능성을 줄여줄 수 있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아이와 함께 서점에 가셔서 좋아하는 책을 함께 고르기를 권해드리고 싶은데. 아쉬운 마음이 점점 커진다.
무엇보다 그림책을 읽는 시간은 아이가 주인공이 되는 시간, 그림책이 학습의 도구가 아니라 즐거운 존재라는 것을. 여행이 제한된, 외출조차 제한된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줄 수 있는, 간접적으로 여행을 상상해볼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부모님들께서 먼저 느껴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