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불안과 죄책감의 경계.

40개월, 다시 찾아온 분리불안.

by 말선생님

'분리불안'만큼이나 엄마들에게 죄책감을 주는 단어가 또 있을까. 내가 아는 선에서는, 아빠보다는 엄마가 더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다.

대학원 한 학기를 잘 버텨주었던 아이는 6월이 되자마자

그동안 참았던 서러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가장 바쁜 기말고사 시즌에 맞추어서.


1. 늘 10시 전에 잤는데, 11시 넘어서 잠들기.

2. 주말 낮잠 패쓰.

3. 어디를 가나 엄마 치맛자락 붙들기.

4. 엄마가 없으면 자다가 방에서 나오기.

5. 간헐적인 등원 거부.



'자기가 평소에 소리를 질러서 그래'라는 신랑의 말이

정곡을 찌르면서도 듣기 싫다. 쨌든 부부에게 공동의 책임이 있는건데. 왜 당신의 말에서 나쁜 이야기의 주어는 꼭,

상대방인건지.


이 시기가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사실, 내 아이에게 이런 시간이 오리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시나리오였다.


따지고보면 아이는 일부러 그러는게 아닌데. 그냥 자신의 감정 그대로를 표현하는건데. 엄마가 일을 하고, 공부를 시작했다는 이유 하나로 천덕꾸러기에 때로는 '키우기 힘든 아이'가 되어버린다.


'엄마세상' 그리고 '아이세상(한림출판사)'그림책 속에 담긴 엄마와 아이는 서로를 향해 기다리고 달려간다. 퇴근한 엄마를 가장 먼저 맞이해주는건 아이보다 바닥에 널부러진 아이의 흔적들. 엄마의 제 2의 출근의 시작 싸인일지도 모른다.



우리 어른들이 자녀 양육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고 꿈을 접었다는 이야기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는데. 80년대, 90년대생이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자녀를 돌보기에는

어딘가 익숙하지 않고 더 힘들게 느껴진다. 이건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지만.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시기를 그럼에도 잘 가꾸고 싶다. 서툴지만, 언젠가 이 시간을 기억했을 때, 그래도 노력했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