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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선생님 Sep 14. 2023

돌아보니 '산후우울증'

당연하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

 


 많은 육아방송과 자녀교육서를 읽어왔지만 그냥 지나친 것이 있다면 ‘산후우울증’이었다. 그 누구도 산후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아이를 출산하면 자연스레 몸을 회복하고 복직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익숙한 동네로 다시 왔으니, 아이가 백일이 지나기만 하면 다시 현장에 복귀할 수 있을 기세였다.    

 

 ‘아이를 낳고 나면 신발 신고 나가는 남편이 부러워져.’ 이 말이 이토록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줄 몰랐다. 얼마 전, 한 안무가가 출산 이후 남편의 몸은 그대로인데 자신의 몸은 너무 많이 달라져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양말이 들어가지 않아서 발목 부분을 가위로 잘라내고 신어야 했고, 아이 위주의 삶을 살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아이를 섣부르게 데려온 듯한 기분이었다.     


 100일 전까지는 흑백모빌, 그 이후로는 다양한 색의 모빌을 보여주어도 된다고 들었다. ‘나 전문가라고 했지만 전혀 지식이 없었구나.’ 매일매일 스스로를 자책했다. 신생아에게 언어자극을 주는 방법도 배운 적이 없었다. 어쩌면, 들었는데 관심이 없기에 흘려보냈을지도 모르겠다. 노래를 불러주어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가만히 있는 아기의 모습만 보아도 눈물이 나왔다. 울적함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그림책 모임을 가면 나눔 시간을 갖게 되는데, 산후우울증이 있을 때 그림책과 만난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나에게도 이 무렵에 만난 그림책은 그런 존재가 되었다. 언어치료실에서는 이솝우화 아니면 전래동화로 수업을 할 수 있는 도구에 불과했는데,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그림책을 읽는데 쉴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 작고 작은 아이도 언젠가는 엄마가 귀찮다고 친구를 보러 나가고, 가정을 이룰 날이 오겠구나.’ 산후우울증은 아직 백일도 되지 않은 신생아가 성인이 된 모습도 상상할 만큼 대단한 능력을 심어주었다.     


부모교육을 할 때, 주 대상은 24개월 이후인 경우가 많다. 24개월보다 조금 이른 시기라면 12개월 무렵부터 5세까지가 주를 이룬다. 12개월 이전엔 아기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고, 가정에서 엄마의 몸을 회복하면서 아기를 돌보기에도 분주하다. 그런데 이 무렵에도 엄마의 언어 자극은 필요하다.      


언어발달의 시작은 ‘듣기’이기 때문이다. 우울한 마음을 안고 아이에게 목소리를 전해주는 순간 자체가 울적했는데, 아이가 백일이 지나고, 안고, 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에 따른 에너지가 심겨지는 것 같았다. 이전엔 노래에 관심이 없었던 것만 같이 보였는데 어느 순간 엄마가 노래를 부를 때 발차기를 하거나 눈을 마주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의 작은 성장이 감격스러웠다.      

그저 안전하게, 아프지 않게, 수많은 접종이 무탈히 지나가기 만을 바랄 뿐이었는데.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아이의 자리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산후우울증을 완전히 극복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서 남편의 노력도, 양가 가족의 노력도 극복에 필수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아이는 자라고, 첫 생일을 맞이했다. 이제 슬슬, 일에 더 집중해보고 싶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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