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하기 전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
과거 싸이월드 시절부터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다. '일촌공개'로 지정한 후, 다이어리를 쓰다보면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고, 속상했던 마음에 위로를 받기도 했다. 때로는 누군가 보란 듯이 '전제공개'로 쓴 적도 있지만 나의 일기장의 대부분은 '일촌공개'였다. 사진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시할 것도, 자랑하고 싶은 일상도, 스무살, 아니 그 이전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겐 많지 않았다.
그리고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인스타그램으로 sns 플랫폼이 넘어가면서 나도 사회인이 되고, 세상에 눈을 조금씩 뜨기 시작했다. 그래도 페이스북까지는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과시하는 일상을 올리기보단 정치적인 생각, 사회의 한 단면에 대한 의견, 소소한 데이트, 공부하는 일상을 올리기에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한 친구와 공동체의 일원을 소환하고, 좋아요를 누르는 재미가 있었다. 소속감을 느끼면서, 싱글 시절, 사회 초년생 시절의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과시와 자랑을 뛰어 넘어가고 있었고, 그 현상이 육아에도 그대로 흡수되고 있었다. 전문가가 아닌 육아 경험을 가진 엄마들이 전해주는 육아 팁, 아이와의 일상을 보내기 좋은 정보, 여행 정보들이 즐비하는 곳. 팬데믹 시기엔 서로의 어려움을 달래고 달고나 라떼를 만드는 소소한 재미까지 있었는데 다시 일상이 회복되면서 여름 휴가 때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누군가는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풍족함이 최선의 육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어도 필요한 순간에 동기화가 되면 더 즉각적으로 나오고, 나의 말이 되듯이 책도 육아용품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육아 인플루언서가 추천하는 영양제부터 아이의 발달을 돕는 교구, 책을 사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산 제품에 모두 만족한 것도 아니었다. 더 솔직함을 보태면, 다 사용하지 못하거나 다 읽지 못해서 대기를 하고 있는 용품과 책이 더 많았다.
사실 이런 구매를 하는 이유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로, '놀아주기 어려워서',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 지루해서' 이러한 경우가 많다. 더 추측하자면 아이와 평소에 함께 해주지 못한 미안함을 달래고자 하는 마음, 보상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아기의 가장 중요한 발달 과업은 '지적 호기심'이다. 호기심이 발달되려면 일상에서 궁금한 것들, 관심이 있는 것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호기심은 부족함에서 더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아이에게는 세계 지도가 그러했다. 아이가 외국에 대한 개념이 없을 때부터 전 세계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그림책을 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왔다.
아이의 인지가 발달되면서, 견문이 넓어지면서, 아이는 베트남, 미국, 중국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그 찰나에 사들인 3천원 세계 지도는 유튜브로 세계 지도 노래까지 연결되면서 최고의 교구가 되었다. 만일, 이전에 세계 여러 나라의 책을 집에 들여놓았다면, 즉각적으로 아이의 궁금증을 채워줄 수는 있었겠지만, 아이가 충분히 고민하고 탐색하며 대화할 시간은 조금 덜 확보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육아용품이나 교구, 책이 아니다. 매일의 일상에서 궁금한 것이 생기면 엄마아빠와 함께 답을 찾아가고, 대화해가며, 지적 능력을 키워가는 경험이다. 더불어, 가정 안에서 있는 것으로 누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아이에게 최적의 것을 해주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러니까,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인스타그램 때문에 출산율이 낮아진다는 누군가의 말은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너무 부족하게만 키워서도 안되지만, 그 완급을 지혜롭게 조절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