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선생님 Mar 24. 2024

아이를 키운다는 건, 꼭 나쁘지만은 않다.

출산율 0.6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저 위의 제목이, 누군가에게는 거만함으로 비춰질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나에게도 역시 그러했다. 아이를 키운다는건 결코 쉽지만은 않고,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다면, 그 길은 더욱 가파르게 느껴진다. 건강한 아이가 태어날지, 아이는 건강하더라도 가족 중 누군가에게 사고가 생길지, 어떤 병이 찾아올지는 그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태어날 아이를 대신 키워줄 수도 없기에 그 어느 누구도 출산율 0.6의 이 시대에 젊은 부부들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않는다.

육아는 생각보다 더 힘들지만, 생각보다 더 행복하다. 생각보다 더 엄마를 성숙시켜 주고, 누군가에겐 또 다른 직업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그 뒤에는 수많은 희생과 인내가 따르고, 몸이 망가지지만, 그래도 아이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는 과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언젠가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영화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댓글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댓글에 반은 동의, 반은 동의하지 않았다. 육아의 현실이 매운맛인데 마냥 순한맛으로 그리는 것은 거짓이고 공상이고 소설일 수 있지만, 또 너무 극단적으로 엄마의 불행만을 비춰주는 것은 젊은 부부에게 되려 두려움을 더 주는 것은 아닐까 괜한 노파심이 생겼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행복한 모델링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2018년도에 아이를 출산했다. 그 즈음만 해도 합계출산율은 1.0안팎이었다. 직장 선배들도 자연스레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 휴가를 들어갔다 복귀했고, 나도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아이를 낳고 싶었고, 아이가 있는 삶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육아를 하면서 출산을 후회한 적이 없진 않았다. 아이가 문제라기 보다는 나의 자아의 밑바닥을 마주했을 때 너무 더러워서 피하고 싶었다. 나의 일이 뭐라고 그걸 포기하는게 그리 아까워서 아이에게 짜증을 쏟아내고 잘 돌보지 못했을까 후회도 되었다. 어쩌면 지금은 아이가 그나마 조금 성장한 7살이 되어서 이런 글을 쏟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출산을 선택했을 것 같다. 사실, 출산은 신의 영역이기에. 아이를 주십사 기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 이후에 얼마나 잘 키우고, 인내하고, 남편과 의견을 잘 조율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지만,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과 결혼 생활을 지옥으로만 그려낸 방송을 보면 가끔은 속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코로나를 지나오면서 더욱 개인의 시대가 되었지만, 이 세상에 나의 편으로 가장 오래 남을 수 있는 존재는 가족이 아닐까. 나도 지독하게 혼자의 삶을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좋아했던, 좋아할 1인이지만, 저출산으로 인해 아이들의 목소리가 동네에서 점점 사라지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을 더 보태자면 교회 안에서도 다양한 가정을 수용해주었으면 좋겠다. 돌싱, 싱글맘도 소속 부서를 고민하지 않고 발을 내딛을수 있는 공동체. 자모실에서 힘겹게 예배드리는 엄마들에게 한번 더 따스한 눈빛을 보내줄 수 있는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치열하게 예배하는 곳이 있다면, 선교지 다음으로는 자모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육아는 마냥 불행하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마냥 행복하다고도 할 수 없지만, 다시 돌아가더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나의 아이를 만나는 화살표를 선택할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