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살, 사교육에 입문했던 이야기.

다시 엄마표로 돌아왔지만 후회는 없어요.

by 말선생님

'육아'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두려웠던 시기는 마의 18개월, 미운 4살과 5살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과정 중에는 걱정했던 것보다 큰 이슈는 없었어요. 지독한 엄마 껌딱지이긴 했지만, 고집이 눈에 띄게 세진다거나 바닥에 드러눕는 행동을 해서 당황스럽게 하는 행동도 거의 없었지요. 아이는 나름의 속도대로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aaron-burden-1zR3WNSTnvY-unsplash.jpg


그런데 아이가 5살, 6살이 되면서 생각지도 않았던 관문을 맞닥뜨렸어요. 언어치료사가 대단한 직업은 아니지만, 아이에게 그동안 책육아를 해주고, 유치원에 보낸 보상을 받고 싶은 마음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가정에서 아이를 지지해 주고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주도성을 인정해 주기엔 내 아이만 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지요. 특히 아이가 영어에 대한 거부감 없이 오히려 영어 cd를 재미있게 듣고 따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어 학원'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이제는 때가 되었나 보다! 머리를 싸매가며 주변 학원을 검색하기 시작했어요.


며칠의 검색과 전화연락, 그리고 시장조사 끝에 아이와 집안 경제 형편에 잘 맞는다고 판단되는 학원을 발견했어요. 아이는 학원을 좋아했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도 당장 원어민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해리포터 원서 정도는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아무에게도 티는 내지 않았지만, 이러한 상상의 나래를 살짝 펼쳤다가 접었다가를 반복하며 학원을 보냈습니다.


아이가 영어 그림책을 제법 잘 읽고(알고 보니 외워서 말하는 거였지요), 더 학습적인 틀이 만들어진다면, 왠지 모르게 실력이 느는 속도가 더 빨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닉스 반으로 레벨 업을 해야겠다!'

아이는 처음에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차근차근 잘 따라가고 있는 듯 보였어요. 그런데 가정 안에서 즐겁게 영어 그림책을 펼쳐보던 아이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영어 파닉스 책을 스스로 읽고 선생님 역할놀이를 하는 모습도 보였지만(이 모습을 또 기특하게 촬영했던 엄마입니다), 아이에게 pig라는 단어를 보여주고 그림단서 없이, "이거 어떻게 읽는 거야?" 물어보면 주눅이 든 채 입을 꾹 다물었지요. 네, 아이는 그림과 함께 문장을 외웠을 뿐, p가 어떤 소리가 나는지, 소리가 합쳐지면 어떻게 읽는지에 대한 지식을 넣기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던 거였어요.


iana-dmytrenko-XUX2s1wsFmU-unsplash.jpg

그래도 아이가 좋아하니까. 계속 다니려고 마음먹고 주 1회 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아이가 한번 걸린 감기가 낫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1주일, 2주일이 지나고, 한 달 동안 학원을 쉬기로 어렵사리 결정했는데, 아이는 약해진 면역력 탓에 두 달 동안 병원 투어를 하고, 집에서도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물론, 아이가 면역력이 떨어진 것이 학원 탓은 아니겠지요. 부모이기에, 아이가 잘 때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했을 때, 욕심으로 무더운 여름날 아이를 이끌고 학원에 가고, 오며 가며 많은 에너지를 쏟아낸 것이 미안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미안했던 것은 비교하는 마음이었어요. 다른 아이가 술술 읽는 모습, 파닉스를 터득한 모습을 보며 알게 모르게 비교하고 아이를 푸시하게 되었던, 부끄러운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요즘은 학원을 정리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유튜브 영어 영상을 하루 1시간 정도 봅니다. 그리고 자기 전에 그림책을 읽어줍니다. 아이가 선택한 그림책으로, 어떤 날은 한글 그림책으로, 어떤 날은 영어 그림책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이전에 늘 피곤해서 일찍 자려고만 했던 아이의 모습에서 점점 활기를 찾았고, 생활패턴이 유지되면서도 아이는 스스로 주도하는 무언가를 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영어학원에 대해 부정적인 마음은 없습니다. 오히려 학원에 다니면서 아이를 가정에서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가이드를 얻은 부분도 있었고, 아이에게도 자극이 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아이의 컨디션과 엄마의 마음은 늘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영어뿐만이 아니겠지요. 수학도 한글도, 학습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은 내 아이입니다.

학군지에 살면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비교와 경쟁의 마음이 싹틀 거예요. 이때마다 그 에너지를 아이에게 돌리고자 노력합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회복 탄력성을 가지고, 가정 안에서 지지를 받는 경험이 충족되어야 이후에 학습도 해낼 수 있으니까요!

keyword
월, 목 연재
이전 07화4-5세 아이와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