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 대부분을 시골에서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골로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곳도 그다지 '도시' 스러움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내가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은 막차도 밤 10시면 끊기는 그야말로 '시골'이었다. 한 학년에 한 반씩. 그것도 30명도 채 되지 않는 인원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혹은 병설유치원 시절에 본 친구들이 중학교 3학년까지 같은 반으로 올라가게 되는 곳.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시작 무렵에야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반 인원 수가 30명이 넘은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IMF 때문이었다는 걸 스무 살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전학 온 친구들 중에는 도시에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적이 드문 시골로 가족들과 함께 거주지를 옮겨온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이 또한 스무 살이 되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는 나를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어린 시절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사 오기 전 학교에서는 발표도 잘하는 아이였고, 엄마 또한 전형적인 도시의 극성 엄마 쪽에 속했다. 당시에 핸드폰은 없었지만, 엄마들과 정보를 교류하고 내 숙제를 위해서라면 위층 친구네 집에 가서 숙제 정보도 알아왔다. 매주 있는 학교 교실 청소 때도 정말 적극적이었던 엄마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방문 학습지 교사가 매주 왔었고, 이사를 가기 직전에는 영어공부도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내가 자라온 시골 학교의 분위기는 각 학년마다 분위기가 달랐는데, 내가 속한 학년은 유독 분란이 심했다. 친구들끼리 오랜 시간 지내온 만큼의 돈독함이 거의 없었다. 새로 이사 온 친구들은 시골 아이들의 텃새로 인해 한두 번쯤은 따돌림을 당하는 게 당연한 룰이었다. 아빠의 "시골 아이들은 순수하다"는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보아도 80% 이상은 거짓이었다.
나도 그 속에서 주류에 속한 적도 있었고 따돌림을 당해본 적도 있었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결국 점점 입을 닫게 되었다. 빨리 시골을 떠나고 싶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 다시는 내가 살았던 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 아니면,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 멋을 한껏 부리고 옛 기억을 떠올리며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만 오고 싶었다.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다가 <서울쥐와 시골쥐>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어느 그림책 안에서라도 이 이야기는 '시골'과 '도시'의 경계가 분명하다. 화려한 건물, 입에 부드러운 고기와 치즈, 그리고 편리한 자동차, 지나가는 행인들의 멋스러운 옷차림. 하지만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시골쥐는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미련 없이 돌아온다.
<동화나라 이야기 친구, 공감, 장종윤 저>
처음에 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줄 때에는 "선생님도 어렸을 적에 시골에 살았는데." 이야기로 운을 띄웠다. 이 책으로 활동을 할 때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배우게 되는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어휘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학년에 따라 어휘 난이도도 조절하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책 안에서 보고 들어왔던 <서울 쥐와 시골 쥐> 이야기를 깊이 들어가 보면 새로 알아가는 어휘들이 많다는 것도, 또 서울쥐와 시골쥐의 마음이 어떠한지 예측해보는 재미가 있다는 것도. 아이들이 알아가게 된다.
어느 날, 활동을 하다가 아동에게 물어보았다. "OO야, 너는 시골이 좋아, 도시가 좋아?" "... 도시요!" "아, 정말? 이유가 있어?", "그냥요. 홈플*스가 있으니까요." "맞아, 요즘은 그런데 시골에도 큰 마트가 있더라. 선생님도 도시가 좋아."
그런데 계속 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하면서 나에게 다시 되묻고 있었다. '시골이 뭐지? 내가 아직 시골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걸까? 그래서 내 아이도 꼭 도시에서 키우겠노라고 계속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걸까?'(남편의 직장이 서울인지라 어찌 되었든 서울과 경기권에서 지내야 하는데.)
시골로 이사 오기 전, 엄마는 시골에 가면 공기도 좋고 바로 밑에 큰 댁에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당시 부유했던 큰 댁은 정말 맛있는 게 4계절 내내 많았다. 어린 마음에 그냥 그런 줄 알고 엄마와 아빠를 따라 이사를 왔다. 강아지들도 많고 우리 집에서 조금 더 걸어 내려가면 귀에 번호표를 달고 있는 소들도 만날 수 있었다. 등하교 길은 벼가 무르익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 여름에 따로 어디를 놀러 가지 않아도 바로 계곡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라고 한다면 역시 주변이었다. "와, 여기 진짜 시골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서울에 사는 걸 과시해-ㅆ(보였)던 친척 언니의 한 마디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응, 나 시골 왔어. 야, 여기 진짜 아무것도 없어." 그냥 별거 아닌 전화 통화였는데. 초등학생인 나의 마음에 점점 비수가 꽂히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한 뒤에도 제한적인 교육 환경 때문에 도시에서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래도 내가 입시 공부를 시작할 때 즈음에 PMP로 인강을 들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에 EBS에서 수능 출제를 한다는 뉴스 기사가 나왔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인강을 들으며 학원에 앉아있는 많은 수강생들의 머리가 보였다. '나도 저 무리에 속해있었더라면 인 서울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첫 직장 또한 '읍내'에 속한 기관이었다. 학창 시절을 보낸 곳에 비하면 번화가였지만. 나는 내가 속한 기관에 너무나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아직은 주변의 말을 받아들여낼 마음 밭이 가꾸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주말마다 공연 보러 다니거든. 그리고 여기... OO역에서 OO역까지 걸어가면 기분이 되게 좋더라고. 여기 오피스촌을 걸어 다니면 내가 살아있는 것만 같아." 이런 이야기를 들은 뒤에 버스를 타고 내가 사는 곳 입구로 들어왔을 때에 느껴지는. 괜히 내가 사는 지역이 초라해 보이는 그 마음은 지금까지도 계속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과 적어 본 시골과 도시에서 각각 볼 수 있는 것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도 아이 엄마가 되었다. 아이 엄마가 된 뒤로는 더 생각하게 된다. 과연 나의 아이를 어느 곳에서 키워야 할까?
코로나가 터지기 전만 해도 나의 생각은 변함없이 '도시'였다. 어린 시절 내가 겪었던 시골에서의 안 좋은 기억들이 왠지 아이에게 대물림 될 것 같았다. 내 아이는 도시에서 다양한 문화 혜택도 누리고, 교육적인 혜택도 최대한 많이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다. 점점 인터넷으로, 모바일로 들을 수 있는 양질의 교육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고, 사람들은 도시에서 누군가와 접촉하는 걸 꺼리고 있다. 어떤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강남 8 학군의 집값 또한 예전의 명성을 다하지는 못할 거라고 한다. 전원주택 안에서도 최고의 강의를 들으며 공부할 수 있고, 또 잠시나마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시간이 더 주어지니까.
<수박이 먹고 싶으면, 김장성> 지난 2019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구입한 책.
<수박이 먹고 싶으면> 책을 보면 농부가 수박을 키워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는지 정말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탐스럽게 수박이 커져갈수록 읽는 아이들과 나의 입에 군침이 돈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것들, 빠르게 만들어진 것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기다리고, 흙과 함께 호흡할수록 마음이 유연해지고 열매도 더 탐스럽게 맺어진다.
요즘은 더더욱 '시골'과 '도시'의 경계가 허물어져가고 있는 시대인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이 지칠 때에 자연스럽게 한적한 곳을 찾는다. 한 때는 SNS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 사진만 찍고 자연을 망쳐놓고 간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코로나를 겪으면서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 또한 점점 달라져가는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그려본 수박이 자라는 과정.
이 사진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가을 하늘 모습이다.
아이들에게도 정답을 알려주기보다는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시골에서 볼 수 있는 것의 구분이 없지는 않지만) 가치관을 잘 심어주어야 할 것 같다. 시골에 산다고 해서 문화적인 혜택을 누릴 수 없는 게 아니라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서 뒤쳐지는 게 아니라고. 도시의 이미지와 시골의 이미지의 구분은 사실 요즘 점점 옅어지고 있다고 말이다.
이 책은. 작년부터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에게 나와 수업을 하게 되면, 한 번쯤은 꼭 읽어주는 그림책이다. 1900년대 초반의 서울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고, 시골쥐의 마음을 함께 예측해보면서 아이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점점 더 많아지는 책이다. 이제, 이때의 모습은 우리 할머니의 어린 시절보다도 더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그리고, 도시와 시골의 경계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인 것 같다. 내 마음이 건강하다면 sns 안에 서울 어딘가의 사진을 올리면서 나의 자존감을 채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외부적인 요소들은 한 개인을 포장해주지 못하는 시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외부 요소들이 없어지고 나 홀로 남겨졌을 때에도 나 자신이 전문적이고 아름다운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