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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선생님 Jun 13. 2024

언어치료사 엄마에게도 언어자극이 쉽지 않았어요.

누구에게나 순탄하지 않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언어치료 현장에서는 항상 10분의 부모상담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 날의 아이의 반응, 새롭게 말한 말, 그리고 가정에서의 과제를 전달해드리는 시간이지요. 이 시간이 초임 치료사 시절에는 참 부담스러웠습니다. 한편으로는 가정 과제를 드릴 때 가장 자신만만해지기도 했어요. 무언가 전문가스러운 느낌을 조금이나마 풍길 수 있는 시간이길 바라는 마음에 컸고요.


치료실에서 마주하는 양육자분들의 상황을 최대한 공감하려고 노력했지만, 미혼일 때는 그 공감의 깊이가 지금보다는 깊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아이를 위해 과제를 드린건데, 하루에 10분의 시간도 없는걸까?' 솔직한 마음으로는 이러한 생각을 가진 적도 있었어요. 그 생각은 내 아이를 출산하고, 아니, 임신을 하고, 입덧을 시작하자마자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교만함과 점점 더 가까이, 치열하게 독대해야만 했고, 지금도 그런 시간을 갖고 있어요.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일 수 있지만,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라는 말이 있지요. 아마 선생님들께서는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 내 아이를 가르치기란 교실 수업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요. 학습도 그러하지만, 언어자극 또한 비슷한 프레임을 띄우곤 했습니다. 왜 내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데 자꾸만 시간을 보게 되는지, 스마트폰에 눈이 가는지, 차라리 집안일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되는지. 참 게으르고 아이에게 잘 대해주지 못하는 엄마가 되어가는 것만 같았어요.


대학시절, 그리고 싱글 시절, 간접 육아 체험을 하고자 <sbs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프로그램을 보거나, <ebs 부모 60분>을 보곤 했어요.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지점과 맞닿아 오히려 더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소름이 돋기도 했습니다. 정말, 내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세상 그 무엇보다 투명해지고, 벌거벗은 내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았지요.



이러한 과정 가운데, 좌절만 한다면 좌절로 끝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 시절, 일기가 밀렸지만, 다시 시작하면 또 이어지듯, 언어발달을 위한 자극 또한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이는 언제나 엄마를 환대해주고, 두 팔 벌려 기다려주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작은 몸짓, 눈맞춤, 말 한마디에 반가워하고, 들뜬 마음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옵니다.


책을 읽어주는 것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읽어주고, 또 잠시 쉬어가다가 또 다시 읽어주면, 아이는 엄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요. 밀렸다고, 그동안 해주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마음은 아주 잠시만 갖기로 해요. 아이도 엄마의 자책하는 마음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이를 환대해주지 않는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지하철에서도, 그 어떤 공공장소에서도, 아이를 사이에 두고 오가는 작은 정이 점점 사라지고 있지요. 각박해져가는 시대에, 아이를 양육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대단한 일을 해나가고 있는 것 아닐까요? 한 생명을 기르고, 양육하는 과정이 순탄하고 교과서처럼, 육아서처럼 잘 된다면 참 좋겠지만,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은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잘 했다고, 아이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고, 스스로를 칭찬해주시고 다독여주세요. 아이는 엄마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낍니다.우리는 이 사회 속에서, 아니, 우리도 이 저출산 시대에 엄마로서, 양육자로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잖아요. 


살아가는 내부 모습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 말이 있지요. 인스타그램, tv 속 부유한 집과 아이의 모습은 어쩌면 작은 일부분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에게도 그런 일부분의 순간이 존재할 거예요. 그 찰나를 찍어 올리면 또 다른 누군가의 부러움을 살 거고요.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골방과도 같은 육아, 양육의 긴 시간, 조금더 힘을 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도 엄마도, 같이 성장하고, 이 사회가 조금 더 따뜻한 시선을 비추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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