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어른들에게 추천해드립니다.
한국 사회가 '빨리빨리' 문화라는 것은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있다. 그러니 그 안에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우리의 아이들이다'라는 것 또한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도 시사 프로그램에서 가끔 다루었던 것 같다.
청소년기 때는 입시에 지쳐서 생각할 겨를이 없지만 20대가 되어서는 문득 지나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내가 엄마가 된다면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라는 생각을 누구나 갖게 된다. 특히, 교육 쪽 전공을 하고 있다면 실습을 나갈 때, 전공서적을 마주할 때마다 나름의 가치관을 보이지 않게 하나둘씩 쌓아간다.
언어치료실은 발달이 또래보다 느리다고 생각된다는 엄마의 이야기로 아이, 그리고 엄마와의 만남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성인들도 어느 한 부분에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돼서 병원을 찾아가면 의사가 해당 부분만 원인으로 이야기하지 않듯이(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아이들 또한 모든 게 얽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어발달이 또래에 비해 늦되다는 검사 결과가 나오면 인지, 정서적인 부분까지 함께 살펴보게 된다. 이 과정이 부모에게는 참 힘든 과정으로 느껴질 수 있다. 내가 그동안 양육해 온 모든 과정을 아이의 검사결과지 하나로 함께 평가받은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에.
나 또한 전공 서적을 읽으면서, 아이들 수업 보조 자원봉사를 자주 나가면서 결코 내 아이에게는 교육면에 있어서 빠르게 무언가를 재촉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싱글 티를 내지 않고자 <EBS 부모 60분> 프로그램을 보고, 월급날마다 대형서점으로 가서 양육서 들을 사보면서 더욱 다짐이 굳혀졌다. '엄마의 욕심은 아이를 지치게 만든다. 치료실에서 놀이치료를 받는 아이들은 부모의 양육 방식이 잘못되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실전에 들어가 보지 않았기에 가질 수 있었던 다짐이었던 것 같다. 내 아이는 경우 30개월을 앞두고 있지만 점점 서점 매대에 있는 양육서를 보기에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건 왜 일까.
육아의 세계는 어떻게 생각하면 비교를 하게 될 수가 없다. "우와, OO(이)는 벌써 걸어? 우리 애는 아직...", "우리 애는 아직 배변 못 가리는데. 정말 대단하다.", "어머, 벌써 영어로 대화도 해? 어떻게 가르친 거야, 비법 좀 알려줘." 이러한 이야기가 오가지 않는 미취학 아동 엄마들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겉으로는 대단하다, 부럽다고 이야기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왜 우리 아이는 '아직'이지? 내가 일을 다녀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집에서 무언가 해주지 못한 게 있나? 신랑이랑 요즘 들어 자주 티격태격해서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가? 엄마의 머릿속으로 작은 에세이 한 권을 쓰며 집에 돌아간다. 그리고 아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닦달 아닌 닦달을 하고 있다. "엄마가 알려 줬잖아, 방금. 이거 1(일)이라니까."
빠른 조기개입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이 경우를 결정하는 게 가장 어렵지만),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주는 게 때로는 정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비교하지 마세요.
비교하면 마음이 작아져요.
<빨리빨리라고 말하지 마세요>
<빨리빨리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림책은 작년에 그림책방에서 보았던 책이다. 사실, 그때는 내용을 읽어보지는 않았다. 어떤 내용일지 대충 예측이 되었기 때문에 아이들 수업용 그림책만 구입하고 어느새 머릿속에서 잊히게 되었다. 이번에 그림책 수업을 들으면서 다시 만나게 된 책. 선생님께서 책을 읽어주시는데 ZOOM으로 책을 보는데도 마음이 울컥해졌다. 나의 아이에게뿐 아니라 나에게도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서두르세요?
서둘러 어딜 가나요?
아이의 배변훈련을 아이 속도에 맞추어 가겠노라 늘 다짐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항문기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들 하는데, '중요한 시기'라는 단어만 강하게 머릿속에 남았을 뿐 아이의 마음을 읽거나 기다려주기엔 일상이 너무 바쁘다.
그래도 배변은 조금 더 큰 주제에 속한다. 출근 전 아이의 등원 준비를 할 때, 아이와 산책하거나 장을 볼 때, 아이가 옷을 고르고 있을 때, 아이가 풀 밭에서 개미를 구경할 때. 늘 아이를 재촉하게 된다.
빨리, 빨리! 빨리 좀!
어쩌면, 올여름부터 영어 그림책을 계획한 것도 나의 아이를 조금 더 '빠르게' 키우기 위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면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빨라서 좋은 게 뭐지?'
영어를 일찍 배워서 영어에 능숙해진다면 영어 유치원이나 조기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모든 아이들은 영어를 잘한다는 명백한 공식이 성립되어야 하고, 예체능을 빨리 배워야 그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명백한 공식이 성립되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공식은 보지 못했다.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가고 있다'라고 육아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엄마가 받아들이기엔 때론 답답하고 때론 '저분의 아이는 잘 커서 저렇게 이야기하실 수도 있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는 어쩌면 엄마, 아빠, 그리고 세상과의 교감에 오래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클 것 같다. 이제 세상에 나온 지 30개월도 채 되지 않은 아이는 30년 넘게 세상을 살아온 나와 보는 시야도 다르고 머무르는 시간 또한 다를 것이다.
아이가 돌도 되지 않았을 무렵, 나의 일이 육아로 인해 정체되는 것만 같아서, 아이가 또래에 비해 걷는 시기 나도 느린 것 같고, 말할 수 있는 단어도 몇 단어 안 되는 것 같아서 복잡한 마음으로 선배 치료사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선배가 들려주었던 답 또한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다.
지금은 늦게 가는 것 같지만,
아이 옆에 잘 있어 주면서 잘 기다려 준다면,
언젠가 아이가 스스로 무엇이든 하는 게
아쉬울 만큼 커있을 때가 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