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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자리 Oct 11. 2024

마리의 기차 여행

외로움 3 - 기다리지 마, 중요한 건 너의 선택일 뿐이야.

한동안 마리는 내게 말이 없었다.

며칠은 내가 성당에 다녀온 것에 대해 뭐라 한소리 듣겠구나 했는데 거의 내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 양, 그녀는 자기 생각 속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새벽 기차역에서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며 그저 큰엄마의 등에 기대어 있던 그 한없이 쓸쓸한 외로움이 그녀를 온전히 잡아두고 있었다.


처음 만난 날부터 그때까지 한 번도 마리와는 편안하게 대화해 본 적은 없었다는 걸 그녀가 조용해진 이후에 깨달았다. 그녀의 모진 구박을 피해 다니거나 변명을 하거나 그의 성화에 맞장구를 쳐주긴 했으나, 조용히 침잠해진 지금에도 감히 마리에게 무슨 말을 건넨다는게 늘상 망설여지곤 했었다.


성체조배실에 다녀온 그 밤 이후 뭔지 모를 안정감이 생겼달까. 물론 그 이후 다시 가진 않았지만.
사이가 좋든, 사이가 좋지 않든 간에 상대가 나를 위해 하염없이 울어주었다는 것이 뭐라 말로는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운 위안이 되긴 했었던 것 같다. 그제서야 마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대화를 해볼 용기가 생겼으니.


창밖으로 석양이 지던 저녁, 그녀가 하염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듯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매번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아주길, 이해해 주길, 공감해 주길, 챙겨주길 바라는 새벽기차역 어린 마리의 모습.


더 이상 기차를 기다리지 마. 기다리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


마리가 시선을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모든 역엔 기차 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잖아. 그 시간에 니가 타고 싶은 기차를 타면 되는 거지.
열심히 기다린다고 기차가 빨리 오는 것도 아니고, 그찮아?
중요한 건 도착한 기차를 탈건지 말건지 니가 선택해서 올라 타는거야.
무조껀 기차가 들어 온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닌 거고.


그런가... 그렇긴 하네. 기차는 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그런 생각은 못해봤다.
근데 내가 기차를 타도 될까? 엄마 곁을 떠나서? 나 혼자?


처음 듣는 마리의 순진한 호기심이 드러나는 질문에 피식 터지는 웃음을 참아야했다.

이런 어리고 소심한 마리의 얼굴은 정말 낯설다.

 

타지도 않을 거면 뭐 하러 기다려. 집에 가서 편하게 잠이나 자지.
새벽에 을씨년스럽고 청승맞게.


긴장감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툭툭 내뱉는 내 말이 신기했던 걸까.
마리는 한참 나를 보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

.


다음날 새벽. 그녀가 사라졌다. 한마디 말도 없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 말이 없었어도 알 것 같았다.

그녀는 그 새벽의 기차를 혼자 타보기로 선택한 모양이었다.


그저 바라보고 기다리기만 하던 마리의 나 홀로 기차여행이라...

내게도 마리의 두려움과 설레임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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