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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자리 Nov 19. 2017

안전이 우선이다.

포항 지진으로 미루어진 수능. 그리고 떠나는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


양평으로 개인상담을 가는 길, 고즈넉한 가을 끝자락을 느끼는 것도 한순간

경보음이 요란스럽게 울리고 있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정신없는 벨소리를 끄고 나서 보게 된 포항의 5.4 지진.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새벽까지 포항에는 수십여 차례의 여진이 진행되고 있으며

하늘이 두쪽 나도 틀림없이 치러질 것 같은 수능도 일주일이나 미뤄졌다.


무너져버린 학교와 집, 하루아침에 체육관과 피난처로 도망쳐야 하는 사람들.

누구도 며칠 안에 이러한 현실을 맞게 되리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으리라.    

  

수많은 혼란들이 이어졌다. 얼떨결에 수능이 미뤄진 1999년생들의 하소연은

우리 사회의 재난의 역사와도 같았다.

신종플루, 세월호참사, 메르스, 경주지진에 이어진 포항지진. 그리고 미뤄지는 수능.

다사다난한 모든 이해할수 없는 재난에

차라리 아홉수를 탓하는 풍자적인 글들이 쏟아졌고

게다가 포항의 지진이 교회에 세금을 징수해 신이 진노하셨다는 둥,

정권의 탓이라는 둥 말도 안 되는 철없는 어른들의 망언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더군다나 땅밀림 현상과 액상화 현상이 발견되면서

포항 주민들에게는 공포와 불안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대피소에 사생활을 보호하기위한 텐트와 가림막이 설치되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의 재난대처는 예전보다 빨라지고 섬세해졌다.

지진 경보도 경주 지진보다 신속했고,

반나절 만에 수능 연기 조치도 이루어졌다.

다들 놀라워했지만 예정되었던 수능 당일에 이어진 여러 차례의 여진들은

그 결정이 옳았음을 증명해주었다.

포항으로 바로 내려가 현장을 진단한 정부 관료들이

‘지시에 연연하지 말고 현장에 대응하라’고 지침을 내린 것도

대피소에 사생활 보호를 위해 천막이 쳐지고

LH 아파트를 임시거처로 제공하게 하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조치들은

이 거대한 혼란 속에서도 하나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한다.


사람의 안전이 우선이다.     

사람의 안전이 우선이다.

우리는 이 두말할 나위 없는 원칙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는데

너무 긴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주말 목포신항에서는 다섯 분의 미수습자들의 이별식이 거행되었다.

 세월호 참사 1311일 만에 유해 한 조각을 찾지 못하고

떠나는 가족들의 마음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음악을 좋아하고 엄마를 챙겨주었던 현철이와

스포츠를 좋아했던 영인이,

아이들을 구하러 다시 배로 돌아가셨다는 양승진 선생님,

그리고 어린 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했던 혁규와

그의 아버지이신 권재근 씨,

그들을 기다리며 지옥의 나날을 보내다

결국 가슴 아픈 결정을 하고 목포신항을 떠나며 오열하는 가족들.


문득 생각하게 된다.

세월호에 있었던 이들과 가족들의 불안과 공포는

그날만의 기록으로 멈추는 것이 아님을.     


이별하는 날, 모진 바람이 불었다.


포항 지진이 있던 시각 우리의 전화벨은 울리고 또 울렸다.

괜찮으신가. 무사하신가. 아이들 수능 본다는데 학교는 멀쩡한지.

우리 가족은 무사히 대피한 건지.

우리는 또다시 재난을 살고 있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 기억하는 것.

절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 생명을 우선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사랑하는 이들을 잃어버린 슬픔을 우선할

그 어떤 가치도 성장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많은 혼란이 우리 앞에 있다.

수능이 미뤄졌고 이에 맞춰 모든 학사일정은 연기되었고

여전히 포항은 지진의 여파 속에 수천 명의 이재민이 강추위를 견디어내고 있다.

과거의 아픔은 언제든 현재의 우리 일일 수 있기에

다른 사람의 일은 더 이상 남의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오늘 제대로 준비하고 대처하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다음은 내 차례,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포항 지진은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부디 이 혼란 속에서 우리가 지난날의 절망을 통해

배운 그 수많은 가르침들을 기억하길 바란다.

우리에겐 여전히 사랑을 표현하고 격려해줄 시간이 남아있으며,

괜찮다고 그 어떤 결과든 우리가 함께 살고 있음이

다시없는 기적 같은 시간이라고 말해줄 기회가

지금 우리 앞엔 남아있다는 것을.


두고두고 우리가 그 차디찬 바다에 아이들을 놓쳐버린 것을

가슴 아파했던 것처럼 다시는 누구도 잃어버리지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이 혼란을 건너가기를.


사연 많은 1999년 고3들에게 어여쁜 꽃길을 밝혀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우리가 우여곡절 속에 곁에 함께 살며 꿈꾸는 지금이

어떤 성공보다도 어떤 발전보다도 더 보석처럼 소중하다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자신에게 온 또 한 번의 기회에 최선을 다해줄

우리의 든든한 고3들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며

재해 속에서 황망할 이재민들을 관심을 갖고 돌아보아야 한다.

이 시간에도 최선을 다해 재난구호에 애쓰실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본 글은 지역 신문 칼럼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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