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래의 육아 이야기_과정이 즐거운 아이를 만나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무척 바빠 보였다. 바쁜 이유를 들어보니, 내일은 반 임원선거가 있는 날. 전부 완성하지 못한 회장 선거 연설문 원고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후보 공약 연설문을 써야 하는데......' 라며 며칠 전부터 공약 발표문을 생각하고 있는 듯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에도 아들이 써 놓은 글을 보지 못했는데, 듣고 보니 워드 안에 작성을 하고 있는 중이라 하였다.
'회장이 되고 싶니?'라는 말을 먼저 묻지 않았다. 무엇보다 엄마의 기대가 부담으로 다가가진 않을까 하는 나의 작은 배려이기도 했다.
그런데 새 학년 새 학기 등교를 앞둔 어느 날, 아들은 2학년 1학기 때처럼 3학년이 되면 회장이 되고 싶다 하였다. '엄마, 1학기 때 회장이 되려면 말을 잘해야 해요.'라는 예상 계획을 나에게 어필까지 했다. 작년에는 앞에 서서 후보 공약 발표를 잘해서 회장이 되었다고 스스로 으쓱했었지만, 엄마인 내가 생각하기에 큐브 덕을 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는 것. 1학년 겨울 방학 동안 익힌 큐브를 들고 아이들 앞에서 맞춰주며 인기몰이를 했던 것이 회장 표를 얻는데 상당히 공헌을 했다는 것을 아들 자신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올해도 이상하고 복잡한 큐브 몇 개 가져가서 좀 보여주지 그러니?"
"그래야죠. 근데요. 엄마. 큐브도 큐브지만, 말을 잘해야 해요. 1학기 때는 새로운 친구들이라 결국 발표로 승부를 봐야 하거든요."
" 말? 무슨 말? 어떻게?"
"공약 발표를 하는데, 너무 간단하게 하고 오면 안 되거든요. 친구들은 말 잘하고 들어오면 뽑아주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말할 건데?"
"그러니까 써서 연습해야죠."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기 방에서 워드를 앞에 두고 뚝딱뚝딱 글을 써온다. A4용지 한 장 안에 폰트를 맞게 조절하여 4 단락으로 나뉜 글을 보고 나는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는 상당히 논리 있게 잘 써진 글이었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적어도 이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을 되돌아봤을 그 잠깐의 되새김이 기뻤다. 셋째는 내가 전혀 손을 봐주지 않아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완벽함이 돋보였고, 넷째는 회장 후보에 나가기 위해 글을 쓰고 암기하여 친구들 앞에서 발표해야 한다는 그 모습에 작은 감동까지 얹어졌다.
완벽하게 외워가야 한다며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한마디 곁들었다. '외우는 것도 좋지만, 못 외웠을 때는 그 종이를 보고 읽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어때?'라고.
설핏 원고의 문장들을 보니 '회장을 시키기 위해 엄마가 극성을 부렸구나!'라는 말이 나올 근사치의 행위임이 극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아들이 콧노래를 부르며 작성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과정이 즐거운 아이. 그 모습을 나는 봤다.
나는 그런 아들인 네가 좋다.
회장이 안되면 또 어떻냐!!
또 그건 너의 새로운 몫.
(2017년 3월 7일, 수정) 2교시가 끝나고 학교 콜렉트콜로 전화가 걸려옵니다. 어제는 20명 정도의 회장 후보가 나가기로 했는데 2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했던 이유로 13명으로 줄어들었다 하고요. 전체 33명 중 18표의 압도적인 표를 얻어 회장에 당선되었다고 하네요. 다음으로는 3표를 얻은 두 명이 공동 2위 순위라 합니다. 아들은 여자 친구들의 인원수(여학생 20명, 남학생 13명)가 남자 친구들보다 많아 표가 쏠림 현상이 있을 것 같아 조금 불안해하더군요. 그렇기에 더욱 수가 적은 남자인 자기가 회장이 되고 싶다고 했었는데 아이의 작은 소망처럼 여자 남자 갈리지 않고 고루 표를 얻은 것 같네요. 저도 기쁩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피자 한 판으로 사기를 조금 더 증진시켜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https://brunch.co.kr/@mire0916/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