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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Mar 11. 2018

9. 이렇게 성장하기로 했다,#잃은 것만큼 얻은 것

아들의 성장,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아들

 

  특별한 경험이나 지식 정보가 아닐지라도 소소한 일상의 사건 사고를 통해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그것의 주체가 어른이건 아이이건 간에 상관없이. 느낀 바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야 할 자신의 방향에 지침서가 될 수도 있으며, 세상살이의 공감을 얻어내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더욱 잘 알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자신만의 앎인 지식이 차곡차곡 쌓여 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다치지 않고 마음 아프지 않는 일상으로 순탄하면 좋겠지만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도 한 탓에 모든 것이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니 말이다.


  지난주, 아들의 치아 중 두 개가 부러진 사고가 다. 호기롭게 새 학기를 시작한 지 나흘째 되던 날이었다. 학기 초가 되면 준비물을 찾아 문방구에 단골이 되듯이 들락거리게 되는데. 그날도 아들과 몇 군데의 가게를 들러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신호등의 초록을 기다려 건너기만 하면 됐었는데 자전거를 탄 아들은 그 신호등을 기다리는 것이 지루했던 모양이다. 신호등 앞에서 약간의 오르막 방향으로 30미터 정도를 달려 나가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신호등이 곧 바뀔 시간인데 한참을 달려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아들이 점점 이해가 되지 않았던 참이었다. 말리는 엄마 말이 들리지도 않았었나 보다. 옆에 오면 잔소리를 해야지 생각했다. 그 순간, 꽈당하며 자전거가 아들 앞으로 쏠리며 넘어지는 것이 보였다. 아들이 울며 부르는 ‘엄마!’ 라는 단어와 울음소리를 들어야 했다. 내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입을 벌리고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무조건 달렸다. 아들에게 달려가 보니 앞니 두 개가 깨진 게 보였고, 이의 조각들은 길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 짧은 사이 윗입술이 터져 붉은 피가 입술 주변을 도배하고 있는 중이었다. 얼굴은 그야말로 가을 풍경화였다. 몇 년 전에 영구치가 된 앞니는 쥐 이빨처럼 흉악한 모습으로 변하여 완벽한 삼각형이 되어주었다. 놀란 마음에 깨진 이를 함께 주어들고 치과로 향했다. 영업시간이라 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면서. 들고 간 깨진 이의 조각은 아무 쓸모도 없게 되었지만, 한 시간 여에 무사히 치료가 끝났다. 사고 전의 정상인에 가깝게 이가 복구된 사실에 우선 감사할 일이었다.


  사고가 난 날은 아들의 학급에서 반 회장 선거가 있는 하루 전날이었다. 회장 후보에 나가고 싶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엉망이 된 얼굴로 아이들 앞에 서는 것이 창피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들과 나의 마음을 알아주었던지 이른 아침의 봄비도 소리 죽여 차분히 내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얼굴에 메디폼을 잔뜩 붙이고 등교를 하는 아들의 발걸음에 토닥이며 함께이고 싶었다.


  “지산아, 오늘 회장 선거일인데, 얼굴이 엉망이라 나서기가 좀 그렇겠다.”

  “휴, 좀 그러네요.”

  라며 아들은 묵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가긴 할 거야?”

  나는 아들의 마음을 확인해보고 싶어 졌다.

  “그럼요. 나가야죠!”

  “공약 같은 건 좀 생각해봤어?”

  “엄마. 제가요 이미 3가지 정도로 생각해 뒀었거든요. 근데 어제 사고 난 것 때문에 그 한 가지에 설명할 내용을 추가하면 될 것 같아요.”


  이렇게 말을 하는 아들이 참 진진해 보였다. 평소에 논리적인 말이라면 누구보다 지지 않을 아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어떻게 정리를 했는지 듣고 싶어 졌다. 자신이 그렸던 공약의 그림은 첫째, 몸과 마음이 다치는 사람이 없는 반 만들기, 둘째, 자신부터 봉사하는 사람 되기, 셋째, 경청하는 사람이 되기였다고 했다. 그런데 어제의 사고 이후 첫 번째 공약에 ‘내 몸을 소중히 하자.’라는 설명을 덧붙여야겠단다. 설명인즉슨, 다치고 나니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많이 아파하는 것을 보고 행동을 조심해야 되겠다는 결심이 섰단다. 서로서로 때리지 않고 다치지 않는 반이 되도록 말을 하면서 자신이 다쳤던 경험을 공약 이야기에 넣어보겠다고.


  아들은 이렇게 스스로 아픈 마음을 느끼며 성장하고 있었다. 적절한 상황에 임기응변을 꾸려갈 줄도 아는 녀석이 된 것이었다. 회장에 당선됐다고 중간에 전화를 하면 재미없을 것 같아 집에 올 때까지 침묵을 지킨 아들이었다. 그 동안 그 녀석의 입이 얼마나 간질거렸을까 싶다. 평소 인기가 많은 다른 후보 한 친구는 '재미있는 반을 만들겠습니다.'의 공약 하나로 아들과 대결을 펼쳐 한 표 차이가 나는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고 했다. 평소 논리적인 아들의 침 튀기는 말발이 그 친구의 인기를 조금 잠재우고 온 날이었다.


  이젠 신경 치료를 겸해 더 자주 다녀야 하는 치과의 담당 선생님이 '내가 너 회장 만들어준 거다.'라고 했던 말도 맞는 것 같다. 아들은 아팠던 만큼 새로운 성장을 얻어왔다.(2018.3.7)




1학기 회장에 당선되고 적었던 아들의 일기에서.


https://brunch.co.kr/@mire0916/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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