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그래 이렇게 나이 먹기로 했다
<부끄러움은 잠깐, 손편지 여행>
“소개팅 한 번 할래?”
“헉. 신경써주어 고마우이. 다음에 시켜줘.”
“아참, 시집이 나와서 그런데 한 권 보내고 싶다. 주소 적어줄래.”
그의 전화번호가 바뀐 모양이었다. 또 몇 년 만에 문자를 주고받았다. 바꿔진 다른 번호로 연결한다는 안내 문자가 깜빡이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 그의 답을 받으며 짧은 대화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여전히 멋지게 지내고 있구나. 내 주변에도 시인 몇 분이 계시지만, 늘 존경하고 있다네.”
“그래? 고마워. 그분들과 비교하지 말고 그냥 오래된 친구로만 보고 읽어주면 감사하겠어.”
카톡창 위에 그의 광주 주소지가 적혔다. 서울의 주소지었어야 할 그의 근황에 무슨 일이 있어 내려간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먼저 앞섰다.
성년이 될 무렵, 광주에서 방통대 산악회 회원의 선후배로 만난 우리들. 나보다 어렸지만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웠던 그가 좋았다.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거친 시간을 따라 사라진 관계였다. 그리고 나 혼자 속을 끓었던 연애사는 더 이상 발전도 감정의 변화도 없이 그렇게 저물어 갔다.
그렇지만 그와는 특별한 관계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기억법을 남겨두었었나 보다. 나는 내게서 일어난 주변을, 기억을, 시선을, 일상을, 편지라는 문체로 투영시키며 꼼꼼히 그리고 소소히 기록했던 것이다. 20여 년 전은 기록이 남아있을 편리한 시절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결과적으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남녀의 추억과는 조금 남다르게 운영하게 돼버렸다. 그가 군대에 입대했을 무렵부터 내가 일본의 유학생활을 경험했던 초창기의 어리바리 했던 그 시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를 보낸 사연은 지금은 나의 재미있는 치부로 탈바꿈했다. 여러 모습을 그의 앞에 뱉어놓게 된 것을 부끄럽게 옮기지 않기로 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나를 위로해주고 싶다 .
“오랜만에 집에 오니 묵은 짐들이 꽤 많이 쌓여있더라고. 집을 오래 비우긴 했나봐. 오래된 게 아직 남아 있어서.”
“???”
“계속 글을 쓴다면 그 예전의 것들이 소재가 되지도 않을까? 부쳐주고 싶은데 어때? 한동안 심심하지는 않을 거야.”
“헐. 야. 대박. 아직도 그 얘기를 하냐. 아직도 그 편지가 있다고?”
“어머니가 함부로 물건을 버리시는 성격이 아니셔.”
“그래? 그럼 부쳐줘. 네가 아직 가지고 있는 것도 웃기다.”
지난날을 훑어버린 색감이 진하게 덧칠해진 편지를 받았다. 낡고 오래된 추억의 편지! 그 시절의 기억과 감정이 새빨갛게 다시 소환되었다. 많은 양의 손편지가 글쓴이의 주인공 집으로 이사를 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지금도 볼 수 있는 변치 않은 나의 글씨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는 숨겨졌고 조금 더 예쁘게 쓸 걸 하는 마음을 앞세웠다. 또한 날짜별로 정리를 해 보고 싶은 생각을 하면서 시간이 좀 걸리겠구나라는 행복한 고민도 함께 섞어보았다.
생각해 보니 그를 상대로 나는 습작 생활을 이미 시작했던 거였다. 1994년에서 95년의 일본생활이 죽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있었음에 '마음이 뭉클하다.' 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지 않나 싶다. 이곳저곳 옮겨 다녔던 젊은 날의 집주소도 내게 다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