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월에 자줏빛과 청색이 어우러진 용담꽃
전국의 산야(山野)에 여러해살이풀로 자란다는 용담이 내 눈엔 왜 이제 띈 것일까. 큰 꽃들은 큰 꽃들 나름대로 화려한 색감과 늘씬한 키로 그 매력을 사로잡기도 하지만, 작은 녀석들은 수수한 자연색에 가까운 색을 연출할 때가 많다. 월동을 하는 녀석들 중, 땅과 가까이 붙어 있는 종을 볼 때면 아련한 아쉬움의 발자취를 보게 된다. 겨울의 바람을 제 몸에 가득 품을 준비를 하는 가녀린 애증과 함께 말이다. 오랜만에 들린 화원에서는 나를 더 봐달라고 하는 듯이 용담꽃은 사랑스러운 얼굴을 활짝 내보이고 있었다.
<용담! 너를 데려왔어>
그래! 생각났어 그 이름
가을이 주무르던 외로움
그 탓에 머리카락 새어가듯
지워질 계절을 나는 기억법
터진 살에 가을비 받아
바람의 온도를 저울질하여
힘껏 뻗은 정맥 가지들
오므린 꽃잎 뒤에 숨겼다
꽃 이름이 날아가 버렸다
호랑나비의 날갯짓과
눈이 햇살에 깨어난 다음부터다
날아간 그 꽃의 이름
골짜기에서 떨어져 나가
익숙한 자음과 모음의 만남을 부추겨
글자의 숲 속을 지키고 있었다
책 속에서 걸어나와
나의 詩에 찬이 되어주었다
그래! 이제 기억했어 그 이름
용담
늦가을 호미질이 반갑다 했다
<용담! 너를 데려왔어, 나미래>
너무 어여쁘게 쳐다봐서 그만! 그만! 꽃 이름을 잊고 말았다. 익숙했지만 또한 투박했던 그 이름. 꽃잎이 열리면 인터넷 꽃 이름 찾기 서비스를 이용할 참이었다. 이렇게만 생각하고 하루를 넘길 무렵, 요즘 빠져 있었던 가키야미우(垣谷美雨)의 장편소설 <당신의 마음을 정리해 드립니다>라는 책의 문장 속에서, 갈피 속에서, '용담'을 발견했다.
이 꽃 이름이 소설 안에 등장함으로써 이 책이 더 좋아졌다. 아주 사심이 가득해졌다. 일본인의 가정사를 어렵지 않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던 내용과 일본어 단어를 그대로 응용한 나름 몇 개는 일본어스러운 번역, 그리고 꼼꼼하게 덧붙인 번역 내용이 시선을 끌었다. 그런데 책에 등장하는 한 여성이 꽃집에서 용담을 꽃꽂이 용으로구입하는 모습에서 뜰 안에 심어놓고 잊고 있었던 그 이름의 용담을 기억해냈다. 책의 꽃집에서는 원예용으로 키워 절화용으로 판매했던 용담이었을 것이다.
구름이 잔뜩 낀 어제 그제였다. 아직 땅으로 다리를 뻗지 못한 용담은 꽃잎을 오므리고 있었고 그렇지만 꽃잎 봉우리를 씰룩거리기 위한 마음을 조금 보이는가도 싶었다. 새초롬하게 땅의 기운과 기를 맞추려는 듯해 보이기도 했다. 열심히 뿌리를 내려 올 겨울을 잘 넘겨주기로 바라본다. 내년엔 정원 안에서 자연이 미리 끌고 오는 기운과 함께 할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 이렇게 함께 서로서로 아끼는 친구가 되어보자. 이 집 뜰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