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인의 정원이야기 Oct 26. 2016

#17김치향으로 전해온다

나미래의 여행이야기_친정여행의 보은

우리 집 앞마당에는 친정에서 분양받아온 꽃과 쌈 채소 몇 개가 자리를 잡고 있다. 특히 친정 텃밭에서 분양해 온 뒤로 이름도 몰랐던 쌉쌀한 맛의 쌈 채소의 정보를 찾고자 인터넷을 기웃거렸지만, 그 이름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쌈 모종을 사러 다니면서 귀동냥으로 알게 된 녀석은 트레비소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채소로 한국어로는 적치곤이라 한단다. 약간보다 조금 더 많이 쓴맛이 나며, 소화 촉진제, 심장 및 간질환, 골다공증, 식이섬유와 미네랄 및 비타민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다이어트에 좋다는 말은 검색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특히, 항암성분이 함유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유독 관심을 끌게 만들었다.

 

마당에서 강하게 뿌리를 박고 있는 듯한 모습의 트레비소. 자르기 전에 찍을 것을 이렇게 사진을 올릴 줄 몰랐다

     
친정 엄마의 텃밭에서는 이름도 몰랐던 이 녀석들이 푸릇푸릇 판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엄마도 위암 전 단계에서 종양을 발견한 적이 있어서인지 항암성분이 들어 있다는 말은 나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시골 친구 집에서 모종을 구해와 엄마에게 건네준 것이 1년 반이 되어간다.  그 사이 하나의 모종으로 시작했던 녀석이 널찍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해살이 채소라고 들었지만, 따뜻한 남부지역이라 그런지 뿌리는 계속 겨울을 넘기는 듯했다. 아니면 인터넷 정보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모체 뿌리가 계속 버티며 그곳에서 새로운 싹을 틔웠고, 보라색 꽃줄기를 내주고 씨앗으로 다시 번식을 하고 있었다. 겨울 몇 달을 제외하곤 상추보다도 더 많이 쌈으로 애용하고 있다는 엄마였다. 봄비를 맞고 생기를 머금고 있는 새싹 중에 튼실한 녀석을 두 뿌리 뽑아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앞마당 구석지에서 자라는 번식력이 강한 두 녀석들은 두고두고 계절을 바꾸며 몸을 부풀리고 쌈 채소를 만들어주었다.

     

시골 친구 집에는 배추잎도 아닌 널찍한 푸른 잎의 채소가 앞마당을 꽉 채우고 있었다. 아들과 해안가 드라이브를 하며 친정집으로 향해가던 중이었다. 멀리서 보니 눈만 보이는 넓은 창의 모자를 쓰고 마당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5년 전에 코에 생긴 암으로 항암치료를 받고 지냈던 친구는 그사이 건강한 모습으로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전혀 붉은 빛이 없지만, 갓 새롭게 잎을 돋아날 때는 붉은 색이 보이기도 했다.

     

“뭐하냐? 친구야.”

“오 미래야 왔어?. 오메 마당에 이것들 징그럽다. 아죠. 이것 뽑기도. 너 좀 뜯어가라와.”

“뭐냐? 배추도 아닌 것 같고. 잡초는 더더욱 아닌 것 같고.”

“응……. 약 초래. 이름은 몰겠다야. 쌈으로도 먹고. 시아버지가 암에 좋다고 이 약초를 어서 구해오셨는데, 뽑아내도 번식력이 너무 강하다. ”

     

그날 나는 쌈으로 먹어보고자 봉지에 이파리를 욕심껏 담아 왔다. 그리고 몇 뿌리는 뿌리째 파서 엄마에게 텃밭에 심을 것을 요구했었다. 친구의 시아버지는 무척이나 며느리를 아끼셨던 분 같았다. 5년 전,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나서 시골에서는 친구의 딸 엄마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졌다고 한다. 보험이 되지 않았던 고액의 항암치료를 서둘러했던 것도 딸을 지키기 위한 모정이 뜨거운 피를 끓었었다고 그녀는 종종 말을 잇곤 했다.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남편도, 부모도, 내 앞에 그 누구도 친구를 위로해 줄 수는 없었다고 했다. 오직 외동딸의 모습이 아른거려, 죽을 수도 없었고, 죽고 싶지도 않았다는 속내는 내 가슴을 절절하게 후벼 파기까지 했다. 엄마란 그렇다.

     

이후, 친구는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상활한 맑은 공기를 벗 삼아, 시골 생활을 여유롭게 탐닉하고 있는 듯했다. 정기적으로 새벽 버스를 타고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소리 소문 없이 진료를 다녀가기도 했다고 한다. 마당에서 햇볕을 쬐고, 들 고양이와 강아지의 엄마가 되어 새끼를 받고, 키워내고, 분양을 시키며 그들과 보대끼는 생활이 위안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암에 좋다는 여러 약들을 찾아와 먹이고, 심어두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시아버지의 정성도 며느리의 완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지 않았나 싶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를 태웠을 남편의 바람도 또 어떤가. 며느리의 암 완치 판정 소식을 듣지 못하고 먼저 하늘로 올라가신 시아버지 영정 앞에서 한없이 눈물을 쏟아냈던 그녀다.

     

흔한 쌈 채소가 그녀에겐 귀물의 약초가 되었던 사연을 듣고 있자니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에 다시 한번 감사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전에 친정에서 엄마가 담아둔 트레비소 김치를 맛보았다. 너무 쌉쌀해서 김치로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며 엄마표 전라도 맛의 창작품을 선보였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밥 두 공기를 해치우고 집에 돌아와 나도 한번 담아 먹어 볼 것을 다짐했었다. 줄기 아래 이슬을 머금고, 어깨를 올려 활짝 몸을 펼친 앞마당 트레비소를 뜯어 가볍게 버물려 보니 밥을 부르는 향내가 예사롭지 않았다.

     

친구 덕에 우리 마당에서 버리지 못할 귀물을 얻었다.


*친구의 사연은 허락을 받았습니다.

배추김치 겉절이 담듯 파를 조금 넣고 김치를 담아보았다.



작가의 이전글 #16그래도, 일본어 기업 출강은 즐거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