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래의 시시詩詩한 일상 이야기, 혼자이고 싶을 때 비밀 정원을 찾으며!
1. 영하를 오르내리는 겨울의 하늘은 맑고 푸르다. 온통 집안을 가리고 있던 가림막이 있던 곳을 벗어나니 겨울은 추위가 아니고도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작게 뚫린 다락방 창문에서 하늘과 겨울나무들이 나를 명상으로 초대하고 있었지 아마. 오늘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 깊은 겨울 다락방에 소파 베드를 하나 들였다. 그래서 가끔 나를 귀찮게 말라 라며 홀로 올라와 잠을 청한다. 그리고 소파용 책상을 하나 또 들였다. 편하게 앉아서 노트북을 올리고 넓게 글을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놓고도 싶었기에. 이거저것 채워 넣고 보니 따스한 봄이 더디게 오는 것처럼 둔해졌던 요즘이었다.
2. 정신적으로 편안해지는 공감대를 얻어내는 사람들을 찾아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는구나를 요즘 부쩍 느끼고 있었다. 너무 선을 잘 끊고 맺는 필자의 성격 탓도 무시를 못하겠지만, 무슨 말이든 긍정을 파고들기 전에 의심과 의문을 남기는 두 번째 이유도 그 몫을 단단히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은 수다로 모든 잡다한 고민거리나 소소한 일상의 흐름을 뱉어놓다가도 그렇지 못하는 단계가 다가오면 모든 게 멈추게 되는 현상. 요즘 내가 그렇다. 외로워서 그런 것은 아닌데, 불안해하고 있는 정신적인 내면을 오래도록 갖고 있으려니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
3. 겨울이 좋아졌다. 마을이 조용해서 더욱 좋다. 밖으로 나가줘야 하는 여러 말들이 집안에 머물 때 답답함을 느끼긴 하지만, 조용한 마을의 단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좋다. 겨울은 단순해서 좋긴 하다. 복잡하고 화려한 다른 계절만큼이나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하는 보이지 않는 부담이 내려놓기에 좋은 계절. 길게 느꼈던 겨울 몇 번의 눈을 맞고 몇 번의 마음앓이를 거쳐갔던 겨울, 겨울은 그렇게 조용히 멀어지려 한다.
4. 한창훈 소설가의 출간 소식을 접했다.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이 문자를 받자마자 '겨울 동안 서울에서 '동안거'를 하며 소설 한 편을 쓰려고 한다.'는 지난가을 만남에서의 이야기가 귓전을 맴돌았다. 벌써 신간이 나왔나 의아해하던 차, <2015년 5월부터 2016년 7월까지 [한겨레 21]>에 연재한 [한창훈의 산다이]를 정리해서 묶었다고 한다. 여기서 '산다이'는 거문도 방언으로 축제, 여흥이란 뜻을 나타낸 것이라는데. 거문도 출신, 필자의 고향 거금도와 이름이 비슷해서 사람들이 나와 한창훈 소설가의 고향이 같다며 말을 하고 한다. 노작 홍사용문학관 2017 노작 문화제에서 '국제지역학과'라는 공통 전공을 가지고 있는 소설가여서 한참을 질문했던 기억이 난다. 얼른 주문해서 읽어야겠다.
비밀 정원에선, 나미래
시선을 외면한
물길 가까운 비밀 정원
동동 새 한 마리 눈을 떴다
언제 날개를 펼치려나
어미새 오르내리는 길
근심 바구니 출렁인다
땅을 밟을 수 없는 가벼움
무거운 하늘 벗어나는 상상
오랜 기다림으로 엮어낼
세상을 향한 무한한 기대
둥지 속으로 햇살이 내어준
동그란 영양의 보고를 안고
살결 따라 켜켜이 차려입은
이 등신 몸매 자랑이다
반짝 거리던 소리
별사탕 되어 주어
뜨거운 심장에 서로 설레고
작은 폭우에 대비한
황금빛 보금자리 안온함에
거친 숨결 거두어 본다
하늘도 떨고 있어
새로운 잎새를 맞이할
그 봄을 기다리며
밤마다 흑빛과 잿빛에
흔들려 우는 그 새
핏줄 터진 가지 사이로
새 공기를 받아내며
하늘에 미소점 찍고
봄으로 날아오르겠지
다락방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오랫동안 나무와 이파리들이 공생하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봤다. 누워서 보니 파스텔 색감에 안정감이 들어 스스륵 잠도 오는데 밖은 지붕을 뚫을 듯한 강한 바람을 동반하고 있다. 며칠 동안 가지고 있던 시를 이곳에서 퇴고를 했다. 더 오래 가지고 있단 봄이 너무나도 깊게 물이 올라와 있어버릴 것이기에.
내 옆에서 내 곁을 지키는 반려견 산동이가 자리를 만들어놓으니 신기한 모양이다.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 쳐다보며 짓는다. 미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