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주는 기쁨을 아는 아침형 학생이 되어간다
학원이나 기업에서 일본어를 가르쳤던 때가 있었다. 학원에서 어학강사로 일을 한다는 것은 일반 직장인보다 더 기계적으로 이른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또한 의미하기도 한다. 결혼 전까지 이렇게 해가 돋기 전에 아침을 맞는 게 일상이었다. 강의를 하던 필자에게 아침이란 그랬다. 시詩를 본격적으로 쓰기 전엔 새벽을 달렸던 일본어 강의 때문에 차분한 아침은 잘 오지 않았다.
그런데 필자의 아침이 달라졌다. 아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상큼하고 깨끗한 계절의 냄새를 가장 먼저 맡게 된 것이다. 요즘엔 오전 5시경이면 눈이 떠진다. 알람 음이 요란스럽고 귀찮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어떤 날은 알람 전에 일어나 알람이 울리기를 기다리고 있기도 한다.
일찍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이른 아침의 냄새가 있다는 것을 직접 알게 됐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밤새 안녕했나 싶을 앞뒤 뜰을 살피는 것은 기쁨이다. 깨어 있다 보면 생각은 늘 멈추지 않는다. 그동안 짧은 시를 구상하기도 한다. 전날 산책을 하다 느껴진 감성의 단어들과 문장들은 핸드폰 메모장에서 꺼내 둔다. 무엇보다 지금껏 미뤄왔던 영어책 오디오 읽기reading와 문장 필사를 한 시간 정도 하게 됐다. 아들이 학교에 가는 8시까지 세 시간 정도는 오롯이 나의 시간이 된 것이다. 아들의 등교 시간도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이런 아침을 만들어준 것은 아들이었다. 4월 어느 날, 아들은 필자에게 ‘일출을 봐야겠다.’고 했다. 일출 시간을 매일 체크를 하더니 몇 번 혼자서 대문을 열고 동쪽 하늘이 잘 보이는 도로 신호등까지 다녀오는 것이었다. 역시나 뒤늦게 일어나 아들에게 물어보면 ‘일출을 봤다.’라는 대답. 그리곤 돌아와서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던 아들이 대견하기도 했다. 이 대견이라는 단어 뒤에 ‘나도 일찍 일어나야 하는 거 아냐?’라는 부담이 숨겨져 있지 않았다면 거짓말.
“엄마 저녁 시간에 항공航空 공부를 하거나 여유롭게 보내려면 아무래도 아침 시간을 이용해야겠어요. 날마다 듣는 EBS 수학 강의를 아침에 하는 것이 어떨까요?”란다. 그렇다. 최근 자신의 수준에 맞는 EBS 무료 강의를 통해서 저녁나절에 강의를 들고 있었던 아들이었다. 그 학습 시간을 아침으로 변경하고자 의지를 표명하는데 반대할 부모가 있겠는가.
“할 수 있겠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하루 이틀하고 멈출 거라면 그냥 지금 하던 대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로 회유해보았지만 아들의 의지는 굳건했다.
이렇게 우리 모자는 한 달 이상 각자의 의지대로 아침을 달려보았다. 아들은 일찍 일어나 자신이 직접 고른 수학 강의를 듣고 오후와 저녁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는가 하면, 등교 준비가 여유로워지고 빨라지니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는 사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일찍 일어난 만큼 몸을 많이 움직이게 되니 저녁에 잠을 잘 자게 되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산책을 많이 하게 되면서 답답한 머릿속의 기운들도 내보내니 웃는 일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이런 좋은 습관들. 아침의 좋은 맛은 아들의 사춘기까지 아니 더 중요한 시기까지 알아갈 수 있으려나. 미리 예단하고 걱정하려 든 필자 자신을 반성했다. 설령 그런 시절이 어떤 형태로 다가 오더라도 오늘을 유지해보는 것으로, 오늘을 유지했다는 것으로, 마음을 먹으며 이런 결정을 했다.
‘우리 서로 아침을 양보하지 않기로.’
아침마다 한 장의 사진을 남겨보고 싶었다.
시인의 정원
나미래의 시시詩詩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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