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래의 詩詩한 일상 에세이, 자란다는 것은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
<예의는 있어야죠, 나미래>
아들의 반 담임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모여 있는 단체 카톡에서는 많은 대화가 오가지 않는다. 담임 선생님이 있기 때문도 있지만(웃음), 자칫 늘어나는 많은 양의 대화가 되지 않도록 서로를 위한 배려이기도 한 것이다. 선생님이 전체 공지를 올리는 일은 짧고 굵게 끝이 난다. 준비물이나 안전 주의사항 정도이니 답글을 달지 않아도 편하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담임 선생님은 '교육기부 서예 수업'에 붓이 필요하다고 공지를 해주었다. 먹물과 벼루와 책상보는 있지만, 붓은 여러 개 있어도 갈라진 게 많다는 것. 그래서 붓을 가지고 올 수 있는 친구들은 가져왔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몇몇 어머니들이 확인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용도나, 준비할 붓의 질에 대해 묻지 않았다. 일반적인 글씨 들어가기 연습용으로 이해했었을 것이기에. 그게 문제였을까? 필자 역시 그날 오후 문구점에 들려 6천 원 가량의 서예용 붓 하나를 구입해 아들 가방에 넣어주었다.
아들의 같은 반 친구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온 건 서예 수업이 있었던 늦은 저녁이었다.
“언니, 오늘 OO이가 서예를 하고 와서 선생님께 야단맞았다고 하던데요. 왜 끝이 갈라진 이런 붓을 들고 왔냐고 했다던데요. 선생님께서 끝이 갈라지지 않는 이왕이면 좋은 붓 사 오라는 말씀은 안 하셨잖아요. 그리고 가져올 친구들만 가져오라고 했는데. OO이는 뭐라 안 해요?”무언가 긴장 아닌 긴장이 덮쳐왔다.
아들 친구 엄마는 '끝이 갈라지지 않는 좋은 붓을 가져와야지.'하며 야단친 서예 담당 선생님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전했다. 1학기에 두 번 있는 수업에 수업 재료의 양질 문제로 아이들이 교육자에게 야단을 들어야 하는 것인지. 필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교육기부 선생님(나이 드신 남자 어르신 선생님)께서 세세하게 주문을 안 했던 모양이다. 담임 선생님 입장에서 ‘가격이 있지만 좋고, 끝이 잘 갈라지지 않는 녀석으로 이왕이면 부탁드릴게요.’라고 담당 선생님이 하지 않는 주문을 부모들에게 전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아니라고 본다. '문구점에서 비싼 가격이 아니더라도 학교에서 사용해도 되는 제품이겠지.'라고 붓의 질과 결을 우선 따지지 않았던 게 필자의 입장이다.
아들의 가방 안에 넣어준 그 붓도 필자의 기준에선 비싸지 않지만 그렇다고 싸지도 않았던 문구였다. 한번 묻히고 씻어내니 붓의 머리는 팔랑 걸렸다고 아들이 전했다. 6천 원도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너는 야단맞지 않았니? OO이는 야단맞았다고 속상했던 모양인데.”
“저요? 저는 한 번 쓰니 붓끝이 넓게 갈라져서 얼른 학교에 있는 것으로 바꿨어요. 그래서 좀 덜 야단맞았어요. 좋은 붓 가져온 친구들 붓 들고 선생님이 이런 붓 가져와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그렇게 야단치시는 것은 좀 그렇지 않냐. 끝이 안 갈라지는 좋은 붓으로 보내라는 선생님 말씀도 없으셨고. 서예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어린 학생들은 연습용으로 좀 봐주시지도 않나 보네.”
필자 역시 내심 교육기부로 오신 어른 남자 선생님께 교육은 감사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서운해지려던 참이었다. 그래도 임기응변을 발휘해 자신의 것보다 학교에 있는 붓이 좋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파악하고 바꿔서 썼다는 아들의 말에 웃음보가 터졌다.
1학기에 두 번으로 끝나는 ‘교육기부 프로그램 서예 수업’이 다시 있었던 전날 저녁이었다.
“OO아 붓 다시 사야 하는 거 아냐? 또 야단맞으면 어떻게 하냐?” 라며 붓을 다시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염려를 하고 있는 필자에게 아들이 한마디 한다.
“엄마, 괜찮아요. 이거 다시 가지고 가서 학교에 있는 거 쓰면 돼요. 적어도 들고 왔다는 예의는 있어야 하잖아요.”
아들이 다 컸다. 예의를 차릴 줄을 알다니!
시인의 정원,
나미래의 詩詩한 일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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