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래의 여행 에세이, 4박 5일 동안, 비행기가 잘 보이는 곳을 찾아
평소 아들은 전국의 공항 탐방을 소원하고 있었다. ‘비행기가 잘 보이는 곳’을 찾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비행기의 엔진'을 최대한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과 '공항 내부 구조'도 눈으로 보고 싶어 했던 것은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그 소원이 생각보다 쉽게 풀리는 것 같았다. 바쁜 학교 일정과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 했던 아들의 말이 기동력이 있는 나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엄마인 내가 억지로 끌고 가는 여행이 아닌 아들 스스로 여행 계획을 짜 보겠다는 것. 내 입장에선 금상첨화이지 않겠는가. 아들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실현을 하지 않고서야 배길 수 없었다. 물론 나는 그 누구보다 ‘마음이 원할 땐 언제든 나서라!’라고 외치며 혼자서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부류이기에 이럴 땐 아들과 궁합이 척척 맞고도 남는다.
아들은 전국의 공항 몇 군데를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 같았다. 전국 팔도와 전 세계의 지역이 뇌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다 보니 이번 여행에서 방문해야 할 큰 틀의 공항의 윤곽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충청도의 ‘청주공항’을 시작으로 전라도에선 ‘광주공항’,‘여수공항’, 그리고 경상도에서는 ‘김해공항’, 강원도 ‘양양공항’과 경기도와 서울에선 원하고 또 원했던 두 공항인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이 아들의 계획 속에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4박 5일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주말을 피해 출발!
[청주공항]을 향하던 첫날 일정의 시작은 장맛비의 연속이었다. 체험학습으로 결석을 해도 된다는 것을 아들은 너무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학교에 가지 않는 것을 이렇게 즐거워하면 안 될 것인데 하면서도 가끔씩 이런 마음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면서 아들을 이해하기로!). USB에 저장해온 공항 내부 지상 차트를 인쇄하기 위해 청주 시내에서 한 문구점을 찾아야 했던 것도 여행의 한 조각이 되어 주었다. 막히고 또 막혀 공항의 윤곽을 잡을 수 없었던 군사공항의 비애, 비가 함께한 첫날은 공항 주변의 탐색이 번잡스럽기까지만 했다.
[광주공항]을 향하면서는 구름이 드리운 하늘의 풍경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광주 역시 군사공항으로 인해 사방이 높은 벽과 철조망뿐이었다. “여기요. 아니요. 저기요. 좀 더요. 더! 더 가세요. 우회전이요. 좌회전이요.” 라며 아들은 이미 안내자가 되어 있었다. 나는 운전만 열심히 하는 택시 기사 엄마가 되어 좁고 굽어진 황룡강 길을 따라다녔다. 광주공항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차를 멈췄다. 비행 모습이 자주 오지는 않았지만 바람의 방향과 활주로의 모습, 공항의 주변 모습을 보고 아들은 만족해하고 있었다. 강변에서 불어오던 일상의 흔한 바람은 이 여름 우리에겐 더디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아들의 주변에 그늘 막을 쳐두고 망부석이 된 녀석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림과 짧은 시에 혼을 담아보기도 했다.
[여수공항]으로 향하는 둘째 날 아침의 시작은 친정이었다. 광주공항 주변 들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아들과 다음 일정을 위한 중간 장소로 친정을 소환하기에 이르렀다. 여수에서는 몇 시간에 한 대씩 오는 비행기를 레이더와 비교하며 여유롭게 보고 싶다 했다. 공항 주변에 위치한 ‘율촌면’의 농로는 비행기 소리와 함께 여름날 작물의 성장 소리도 듣게 해주었다. 여름 철새 백로도 논이랑에 발을 담그고 벼이삭이 패기까지의 그날을 보호해주고 있는 듯했다.
이틀 사이에 경상도까지 멀리 달려온 만큼 아들은 [김해공항]을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공항의 규모의 문제라기보다 평소 편하게 접근하지 못했던 지역이기에. 김해공항 주변 변두리에는 기업 건물이 대거 밀집해 있었다. 김해공항 주변에는 안전하게 공항 활주로를 바라볼만한 장소가 변변치 않았다. 먼지가 날리던 도로변 건물 앞에 자리를 잡고 망원경과 카메라를 들고 비행기의 엔진을 보는 아들이 진지해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차량 통행이 잦았던 좁은 2차로는 도로 안전을 확보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달리다 보니 긴 하루 동안 작열했던 태양은 높고 낮은 산 능성이 뒤로 조용히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아들과 나는 김해공항 주변에 있는 삼락 생태공원 오토캠핑장에 자리를 잡았다. 아들과의 여행을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해둔 오토텐트는 오늘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되었다. 아들과 처음으로 텐트를 펼쳐보았고, 쓰러질 듯한 전등의 불빛을 받으며 찬을 준비하여 저녁을 해결하기도 했다. 강렬한 햇살을 피해 도망 나오듯 일찍이 텐트를 걷으며 여름에는 텐트 여행을 하지 말자고도 다짐해 보았다.
셋째 날, 우리들은 강원도 [양양공항]으로 바로 향할 참이었다. 그렇지만, 400킬로가 넘는 거리가 자칫 지루할 수 있다며 [대구공항]을 찍어보자고 아들이 급 제안을 했다. 대구공항이 도심 속에서 좁게 속닥거리고 있었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바로 강원도 7번 국도를 향해 달렸을 것이다.
[양양공항]으로 향했던 7번 국도는 눈이 시원한 바다가 있어 행복했다. 하루에 비행기가 몇 대 날지 않는 공항은 스산하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였다. 비행기는 날지 않았지만 더위를 식혀준 오후의 빗물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푸르고 넓게 뚫린 높은 지대의 공항 주변은 시야 확보가 제대로 되고 있었다. 특히 양양공항을 감싸고 있는 강원도 [양양군의 동호리 해변] 덕분에 여행의 재미는 배가 되었다. 이곳에서도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지역민의 관리를 받고 안전하게 텐트를 치고 숙박을 할 수 있었다. 동호리 해수욕장에서는 여름 한철 텐트를 치는(하루 사용료 2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사람들에 한해서 지역에서 나는 감자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너무 일찍 찾아와서 감자를 받을 수 없었던 1인, 아쉬움으로.
아들이 원했던 마지막 코스는 단연코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이었다. 다른 지방 공항은 아들에게 있어 여행을 하기 위한 들러리나 마찬 가지였던 것이다. 미치도록 달려온 그 길 위에서의 지방 공항은 엄마와 여행을 위해 필요했던 장소(그러면 집에서 처음부터 김포공항과 인천공항만 다녀와도 됐지 않았었는가?). 하이라이트였던 두 곳을 넉넉하게 보기 위해 전국 공항을 도는 열과 성의를 발휘하고 엄마를 제대로 기사를 삼을 줄 알았던 아들. 여행 말미에 나는 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김포공항이나 인천공항을 가는데 굳이 그곳에서 1박이 필요하겠느냐? 집에서 잠을 자고 그곳으로 향하는 것은 어떠냐?’는 나의 제안에 고개를 심하게 젓는 아들이었다. 여행의 감흥이 떨어지기 싫다고 했다. 집에 들어가는 순간 여행은 끝난 것 같은 느낌이라는 아들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여행의 마지막 하루를 남긴 넷째 날은 김포공항을 향해야 했다. 그 사이 여행 기간 동안 함께 했던 반려견 '산동이'를 집에 내려놓게 되었다.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을 전망대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반려견 동반이 어렵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김포공항전망대]는 지근거리의 한국공항공사 6층에 오후 5시까지 무료로 운영되고 있었다. 반려견을 데리고 왔다면 함께 오르지 못했을 전망대의 관람을 아들은 무척이나 흥분해했다. 물론 인천공항 제2터미널과 제1터미널에서의 공항 내 4층에서도 그 흥분된 감흥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텐트에서 마지막 숙박은 인천공항 근처인 ‘을왕리해수욕장’이었다. 진득거리는 해풍의 습기를 피할 수 없었지만 시원하게 불어오는 갯바람을 의지한 체 텐트와의 밤이 무사히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다음 날, 한 달 만에 인천공항 제2터미널로 날아드는 아빠를 만나야 한다고! 그렇게 인천공항 주변에서 공항 탐방 여행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외쳤던 아들의 바람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행을 함께 하지 않는 아빠에게 엄마는 심하게 삐치고 싶다고 전해보았지만 아들은 “엄마, 저는 아빠에게 삐칠 생각은 없는데요. 저는 아빠를 기다리겠습니다.”라고 귀여운 배신을 한다. 도착 대기 카운터로 달려가는 아들은 엄마와의 여행을 이미 끝내고 있었다.
시인의 정원,
나미래 시인의 詩詩한 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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