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래의 詩詩한 여행, 오대산에서의 40대의 단풍놀이!
연일 방송에서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는 강원도 명산의 가을 소식을 전하고 있다. 가을은 우울해진 발의 침묵을 깨고 겨울을 걸칠 우두망찰한 나뭇잎을 태우는 데 정신이 없다. 일조량의 감소로 멜라토닌이 늘어나는 계절엔 붉은 단풍을 보는 것은 작은 즐거움이 될 것이다.
10월이 오면 오대산 선재길에서 나를 기다릴 것만 같은 붉은 단풍들의 소식이 궁금하다. 나이가 들긴 들어가나 보다. 계절의 깊이를 맛보게 하는 겨울로 가는 가을 산이 좋아지니 말이다. 또한 10대가 된 아들의 성장을 읽어보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아들에게 다시 한번 먼 길을 나서자 제안했다. 이번 단풍 여행에 친구가 되어준 조카와 아들. 이들이 일찍 일어난 덕분에 새벽 다섯 시에 출발한 차는 3시간 후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 가을 여행에는 사계절의 체험을 진하게 하고 온 듯했다. 이 청명한 계절은 오전에는 겨울로 데려가기도 했고 오후엔 여름을 만들었으며 선재길의 숲길에서는 잎샘과 꽃샘의 봄을 고루 엮어주었다. 월정사 주변 전나무 숲길에 올라탄 아침녘 햇발은 나무들 사이로 더디게 부서지려 했다. ‘는개’에 가까운 찬 안개 때문이었으리라. 아들에게 겨울 패딩을 준비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월정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상원사까지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꽤 오래 기다렸다. 버스에 올라서는 15분 정도가 걸렸다. 우리 일행은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내려오는 9킬로 가까운 편도 선재길을 걷기로 했다. 50~60대의 성지답게 버스 안에서부터 울긋불긋 단풍 옷을 입은 꽃중년의 모습이 콩나물시루가 된 듯했다.
상원사에서 비로봉(1563m)으로 향하는 등산코스뿐 아니라 월정사에서 상원사 사이에 있는 선재길을 걸으려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낙엽이 떨어지며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온몸으로 잔잔히 듣고 싶지 않겠는가. 위태위태하면서도 날구장창 꾸준히 물길을 실어 나르는 계곡의 유정有情을 들으려고도 하겠지. 가을의 결을 즐기고자 세속에서 지친 몸을 그들의 방법대로 달래고 있었을 것이다. ‘나이는 먹어가는 것이 아니라 물들어가는 거’라던 어느 중년 가수의 노래가 그랬다. 선재길의 단풍 모습이 꼭 그러했다. 나이를 물들이고 애면글면 붙어 있는 우리들의 모습 같기도 했지만 그렇게 억지스럽지 않고 멋스러운 몸의 선들이 웃고 있었다.
선재길이 낳은 계곡은 너럭바위가 많아서 더 좋았다. 계곡 여울 소리도 물빛도 선재길과 함께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아들은 재작년 두 시간 동안 걸었던 구간의 선재길의 가을을 오늘과 비교를 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걷지 못하고 미리 올라타 버린 버스 구간에서는 계곡의 너럭바위와 남실대는 물살과 대화하며 즐거움을 담아왔지 싶다.
이번 여행에서도 많이 걸었던 만큼 아들의 다리에겐 아픔이 전해졌겠지. 그 아픔은 몇 알의 햇살 비타민을 만들었고, 몇 줌의 안온한 가을바람은 엄마의 잔소리를 날리게 했으니. 우리들 각자가 담아온 가을 결은 가슴속에서 계속 붉게 타고 있을 것만 같다. 다시 만날 때까지의 일 년이 행복할 거라고.
<2년 전 이맘때 다녀온 오대산, 월정사, 선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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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정원
나미래의 詩詩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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