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래의 詩詩한 여행 이야기, 경주의 겨울여행
가을을 데려가고 있었다. 조금 더딘 아이들이 만추의 가을을 즐기고 있었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들의 세계에서. 전날 해 질 녘에 바닷물을 뒤집어쓴 아들 친구 동생의 바지는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깨끗함으로 돌아와 있었다.
경주의 겨울은 따듯했다. 함께한 사람들도 햇살만큼이나 따사로웠다. 아들은 요란스럽지 않게 경주에서 자유롭고 여유롭게 행동했다. 엄마를 따라 자주 와 봤던 장소니까 익숙했을 것이라는 생각. 너른 공간이 주는 넉넉함을 마음에 진작 새겼을 것이다. 양껏 걷고, 달리고, 재잘거릴 수 있었으니까. 친구들과 친구 부모님과 함께한 여행에서 자신의 부모가 말다툼과 신경전을 부리지 않았던 덕분이었는지 우리 부부를 더 잘 리드하고 있는 모습까지 보였다.
근래 여행 에세이 출간을 앞두고 글과 사진을 재편집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글을 편집하면서도 보니 경주를 유독 자주 다녀온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경주의 여행 글에 최근 사진이 들어갔으면 하고 바랐다. 아들 친구네 가족들과 여기까지 왔는데(경북 영덕) '시간만 된다면 경주를 들러보고 싶긴 하다'가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강하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배려의 차원이기도 했겠고, 우선 가까운 남편조차 설득하기도 힘든 판국이었다. 우리 두 가족이 속초를 향해 달려가던 때부터 너무 먼 곳으로 와 버렸다는 미안함의 눈치였다. 우리집 남편에게도 그랬지만, 상대편 남편에게도 더 멀어지는 장거리 운전을 시키는 것 또한 못 할 일이지 싶었다.
그런데 경주 지역에 대한 호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우리 가족뿐만이 아니었다.
"경주를 너무 가보고 싶은데 형수님(나) 눈치를 보느라고요."라는 아들 친구 아빠의 말에 만장일치가 된 경주행.
경주의 겨울은 한산함 자체였다. 숙취를 달래지 못한 우리들의 속들은 불국사 근처 분식집에서 면발의 향기를 들이마셨다. 가을보다 더 가을 같았던 경주는 두꺼운 옷들을 벗겨놓고 있었다. 가을의 끝물을 아직 떨구지 못한 몇 그루의 고목에서는 붉은 색감 잔치에 온 기운을 태우고 있는 것 같았다. 사찰의 지붕과 구멍 공간에서 달아나지 못한 잎새의 흔적들은 곧 겨울과 바람 앞에 흔들리겠지.
찬찬히 걷기로 했다. 불국사의 경내도 경쾌한 걸음으로. 목이 마르며 약수를 마시면 되었고, 힘들면 앉아서 쉬어가는 여유가 있었다. 경내에는 모든 게 존재했다. 석굴암으로 향했던 그 토함산, 산책로는 거친 바람을 벌써 다 만나버린 듯했다.
돌아가기 아쉬운 가족들은 전동차를 빌려 타고 첨성대 주변을 달려보았다.
아버지와 엄마는 자식 한 명씩을 태우고.
검게 내린 황리단길의 어둠은 첨성대의 발그레한 분홍빛이 반겨주었다.
추위도 잊고 전동 삼륜차에 올라
밤공기를 맞았던 것은 다리가 아파온 우리들에게 제격이었지 싶다.
핑크 뮬리(분홍 억새)는 어디로 숨었나?
어디에서 더 넓게 꽃을 피우고 있었나?
찾아보았지만, 흔적이 남지 않은 겨울 중이었다.
아직도 볼거리가 남아 있는 국립경주박물관은 다음에 다시 방문하는 것으로!
자주 와보던 경주는 편안함 자체다. 아들은 아빠를 따라 몸을 움직이니 북적한 여행 속에서도 홀로 여행을 떠나옴직한 기분을 순간순간 챙길 수 있었다. 남편이 이래서 가족여행을 싫어했나를 느낄 수 있는 대목. 그런데 아들이 이젠 엄마와 수없이 다닌 여행을 이미 파악했는지 아빠와 여행 스타일을 맞추고 있었다.
시인과 정원
나미래의 詩詩한 여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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