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오랜 시간에 걸쳐 탄생한 글자가 아니라 어느 날 문득 한 사람 또는 극히 몇 사람에 의해 창제의 과정을 거쳐 내부에 완결된 질서를 가지고 있는 문자다.
한글의 첫째 목적은 혼란에 빠져 있던 한자음의 정확한 표기요, 다음으로 우리말을 독자적으로 표기하는 것이었던 셈이다.
한자로 이루어져 있음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들을 한글로 '국민' 또는 '언어'라 적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전혀 한자의 지식이 없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그는 왜 발음대로 '궁민', '어너'라 안 쓰고, 하필 '국민', '언어'라 써야 하는지 통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조어력, 즉 새로운 문물이 등장할 때 그것이 구체적인 것이든 추상적인 것이든 그 문물을 표현할 명칭을 자신들의 언어로 생성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자신들의 언어를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와 직결된다... 소리글자인 한글의 조어력은 무척 약하다. 주시경이 한글을 표기할 때 어원을 밝혀 적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그러한 면에서 시대를 앞선 판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