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래지기 Jun 23. 2017

한글전쟁/김흥식

  대한민국의 대표 '브랜드'라는 한글은 도대체 어떤 문자인가? 무엇이 그토록 과학적인가? 한글을 찬양하면서 한국어는 늘 뒷전에 두지 않았는가? 오랜만에 빛이 아닌 그림자를 보여주는 책을 만났다. 빛과 그림자를 모두 봐야 대상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 제 아무리 한글이라도. 그래서 반갑다.


한글은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오랜 시간에 걸쳐 탄생한 글자가 아니라 어느 날 문득 한 사람 또는 극히 몇 사람에 의해 창제의 과정을 거쳐 내부에 완결된 질서를 가지고 있는 문자다.

  올해가 2017년이니까 한글이 탄생한 지 571년이 지났다. 세종의 바람대로 대한민국의 백성들은 과연 이 새로운 문자로 인해 행복한 소통을 누리고 있을까? 이 책은 한반도 역사에서 우리말과 글이 외부의 도전을 어떻게 이겨냈으며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고, 앞으로 천 년이 지나도 살아남을 것인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책이다.


한글의 첫째 목적은 혼란에 빠져 있던 한자음의 정확한 표기요, 다음으로 우리말을 독자적으로 표기하는 것이었던 셈이다.

  한글은 문자다. 세계에는 언어를 표현하는 수많은 문자가 있는데 한글도  가운데 한 가지일 뿐이다. 그렇다면 한글은 어떤 종류의 문자인가? 바로 ‘소리 문자’다. 한자가 중국어의 뜻을 나타내는 ‘뜻글자’라면, 한글은 한국어라는 소리를 적는 ‘소리글자’다. 이런 특징이 ‘우수한 문자’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단점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지은이는 소리 나는 대로만 적으면 뜻을 파악해 내기 어려운 문자의 단점을 책을 통해 정확하게 지적한다.


한자로 이루어져 있음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들을 한글로 '국민' 또는 '언어'라 적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전혀 한자의 지식이 없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그는 왜 발음대로 '궁민', '어너'라 안 쓰고, 하필 '국민', '언어'라 써야 하는지 통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동양이 한자를 기피하는 동안 서양은 한자를 적극적으로 학습하는 현상을 본다. 왜 한글과 관련된 모든 일이 전쟁인가? 과거에 중국어와 일본어의 도전에 자유로울 수 없었던 한글이 이제는 영어라는 도전에 맞서 힘겹게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흔히 볼 수 있는 수많은 용어와 간판, 상품 또는 영화 제목을 보면, 지은이 말한 것처럼 특정 분야에서 이미 한글은 표기 수단 즉 ‘발음 기호’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Time Paradox’라는 영화 제목을 보자. ‘시간의 함정’이라고 옮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타임 패러독스’만을 관람한다. ‘푸드 트럭’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커피’를 ‘테이크아웃’한다는 ‘커리어우먼’. 우리말로 충분히 옮길 수 있는 낱말마저 ‘한국어식 영어’로 바꾸고 그 발음을 한글로 적어 용어를 만들어 내는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 좋을까? ‘그린 리모델링 사업’이라는 정책을 미는 정부의 ‘정책 아젠다’를 우리는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TV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자. 감탄사마저 영어화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새삼 놀랄지도 모른다. 언빌리버블!


조어력, 즉 새로운 문물이 등장할 때 그것이 구체적인 것이든 추상적인 것이든 그 문물을 표현할 명칭을 자신들의 언어로 생성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자신들의 언어를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와 직결된다... 소리글자인 한글의 조어력은 무척 약하다. 주시경이 한글을 표기할 때 어원을 밝혀 적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그러한 면에서 시대를 앞선 판단이었다.

  지은이는 우리의 언어생활이 온전히 소리글자로만 이루어지냐고 묻는다.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글을 찬양하고 숭배하며 전파하는 일에만 몰두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멈추어서서 한글이 표현하는 한국어를 들여다 봐야 한다. 한글의 약점을 분명히 알고 부족한 조어력을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일이야 말로 이 세대가 풀어야 하는 도전이다. 영어도 소리와 더불어 어원, 즉 뜻을 가지고 있는 언어다. 영어를 멀리하라는 말이 아니라, 영어에 열심을 내는 만큼 한국어의 어원도 밝히고 찾아서 배워나가자는 이야기다. 이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도전인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다. 이 도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한국어와 한글의 운명이 달려있으니까.


<한글전쟁>

김흥식 지음 / 서해문집 출판 / 2014  

매거진의 이전글 디지털 생존 교양/김원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