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수술방 실습 썰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각색되었습니다.
마취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전신마취, 수면마취, 척추마취, 국소마취, 기타 등등. 보통 환자분들의 입장에서는 전신마취가 수면마취 같고 척추마취도 국소마취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좀 다르다. 아마 의식이 없어지는 마취와 의식이 있는 마취의 차이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의식이 있는 마취를 하게 되면 환자와 의사가 대화를 할 수 있고, 원하는 요구사항을 말할 수도 있고, 의료진들이 대화하는 것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가끔 혈압이 무지막지하게 오르시는 분들도 있다. 연다, 잘라, 꼬매, 묶어, 띵동~(순환간호사 호출 소리로 우리 병원은 배달의 민족 띵동~이랑 음이 같다), 뭐해저해... 솔직히 나 같아도 무서울 것 같다.
궁금하실까 봐 전신과 수면 차이만 설명하면 전신마취는 호흡근까지 이완이 되므로 수술 중 기관에 들어간 관을 통해 기계가 강제로 숨을 쉬게 해 주고 수면마취는 숨은 알아서 쉬니까 산소줄만 준다.
그래서 환자분들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계속 환자분을 안심시키는 대화를 하시는 교수님도 있고, 수면제를 주는 경우도 있고, 원하는 음악을 틀어주시는 교수님도 있다. 그 행위가 전부 긴장감으로 인한 일시적 고혈압을 해소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혈압 떨어뜨리는 약 주기 전에 많은 노력을 했다.
참고로 음악을 트는 행위는 환자의 심리적 불안을 많이 낮춘다는 연구결과가 실제로 있다.
궁금하다면 https://www.bbc.com/korean/news-49088233 여기에서 설명하는 논문인 https://rapm.bmj.com/content/44/8/796 이것을 참고하시면 된다.
안과 같은 경우는 백내장 수술이 워낙 많아서 대부분이 국소마취였다. 뭐, 쌍꺼풀도 국소마취고, 전신마취를 했던 수술은 사시 수술이나 안외상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서 환자분들이 들어올 때마다 간호사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원하는 음악 틀어드리는데 뭐 들으시겠어요?" 혹은 어떤 교수님은 시끄러운 음악은 본인이 집중이 안 된다면서 무조건 클래식을 틀고 "지금 나오는 음악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보신다.
어느 날이었다. 백내장 수술만 6개가 쭈르르 있는 날이었다. 나이대를 보니 전부 50~80대. 교수님을 보니 클래식을 좋아하신다고 인계서에 적혀있는 분이었다. 그런데 수술방에 들어가니 나오는 음악은 트로트. 찐찐찐찐 찐이야~~ 사실 나는 트로트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는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들어줄 순 있는데 진짜 찐찐찐찐~~~하는 노래를 계속 듣다 보니 정신이 어지러웠다. 이따 교수님이 오시면 클래식으로 바꾸겠지? 하지만 교수님은 그냥 수술을 시작하셨다. 하긴, 환자분이 요청한 노래인데 맘대로 바꾸기도 애매하고...
그다음 수술 전 쉬는 시간. 드디어 클래식으로 바뀌겠구나! 싶었는데 다음 수술을 위해 들어오신 환자분이 하는 말: "혹시 박상철으로 바꿔줄 수 있으세요?" 네... 당연하죠... 빠라빠라빰빰빰~~ 빠라빠라빰빰빰~~ 찐이야가 가고 나니 빠라빠라빰빰빰이 나오는군... 과연 어떤 노래가 정신이 덜 혼란스러울까. 시끄러운 와중에도 평온히 수술하시는 교수님이 대단해 보였다.
그다음 수술. 이번엔 50대였다. 50대면 좀 신세대이지 않을까? 우리 엄마도 50대인데 발라드와 성악과 뭐 그런 거 좋아하는데. 하지만 50대 환자분 역시 "임영웅 틀어주세요." 그때부턴 그냥 포기했다. 나는 오늘 실습 하루 종일 트로트를 듣겠구나. 운이 나빠서 하루종일 백내장 수술만 볼 운명인데. 하루종일 트로트 들으면서 백내장 수술 참관하기라니. 난 실습이 재미있길 바랐지 이렇게 시각과 청각적으로 지루하길 바랐던 건 아닌데... 그래도 임영웅 노래는 빠라빠라빰빰빰이나 찐찐찐찐보다는 괜찮았던 것 같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평소 듣는 음악을 들어야 평온해질까, 평온한 스타일의 음악을 들어야 평온해질까? 트로트는 평온한 음악도 물론 있겠지만, 그날 수술방에서 나온 음악들은 대부분 평온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환자들은 긴장되고 무서운 수술의 와중에 좋아하는 음악을 동반하기로 선택하셨다. 그런 노래들을 평소에 들었다면 계속 듣는 것이 편안하고 평온하기는 할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그런 분들에게는 조용한 음악이 잡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어 긴장을 할 수도 있으려나? 잘 모르겠다. 논문을 찾아보니 아직 수술 중 트로트 음악에 대한 연구 결과는 없어 보이니 트로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신나는 트로트 음악 vs 평온한 음악' 군으로 비교 연구가 진행되면 재미있을 것 같다.
p.s. 하지만 나는 만약에 수술받는데 음악 틀어준다고 하면 무조건 인터넷에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명상음악 틀어달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