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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레티아 Aug 10. 2023

숨어있는 재고를 찾아 수기 처방전 내기

호흡기내과 실습 썰

이 내용은 실화이지만 각색되었습니다.

호흡기내과 외래 참관을 하던 중이었다. 한 환자분의 보호자가 무슨 약이 필요하다고 오셨다. 사연을 듣자 하니 환자는 거동이 불가능한 상황이고 객혈이 소량씩 지속되어 피가 날 때마다 쓰는 약을 예전에 왕창 받아둬서 썼었는데 그 약을 다 썼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수님은 약 이름을 듣더니만 난감해하셨다.

"그 약 지금 처방 안 되는데... 어쩌죠?"


관련 뉴스를 찾아보았다.

문제의 약은 '도란사민'이었다. 원래는 지혈제인데(보험 적용 가능) 멜라닌 생성에도 관여해 허가범위를 초과한 오프라벨로 기미치료, 색소침착 완화 목적으로 쓰인다고 한다(이건 비급여). 2022년 2월부터 9월까지 품절로 처방이 불가했고, 대체약(보험 안 되어서 비쌈)도 제대로 수급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정확하게 나온 뉴스는 없었고, 한 뉴스에 따르면 업계 측에서 이유를 명확히 말하는 경우가 없었다고 한다. 추정하기로는 원료의약품 수급 불안정, 가격 상승 등으로 생산에 차질이 있다,라는 식인 것 같다.

올해 1월 뉴스를 보니 도란사민이 생산, 수입, 공급 중단 보고대상 의약품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도란사민 생산, 공급을 중단하는 경우 회사는 그 사유를 보건당국에 60일 전까지 보고해야 하고, 아니면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대체약이 보험이 안 되고, 약이 모자라면 기미 환자분들은 그렇게 영향은 없지만 실제로 지혈에 사용해야 하는 분들에게 악영향이 커서 그렇게 된 것 아닐까 싶다. 근데 생산 중단을 60일 전에 알 수 있나? 공장에 불나면 바로 중단 아닌가

관련 뉴스: 
약사공론, 나올 기미 없는 '도란사민' 약국 머리만 핑돈다? https://www.kpanews.co.kr/article/show.asp?category=D&idx=232048
Press9, 제일약품 ‘도란사민캡슐’ 생산‧수입‧공급 중단 보고 의약품 선정 https://www.press9.kr/news/articleView.html?idxno=54027

난감해하던 우리에게 환자분께서는 처방전만 준다면 재고가 남아있는 약국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근데 전산에 입력이 안되는데 처방전을 어떻게 내지? 교수님은 간호사 선생님을 불렀고, 수기처방을 어떻게 하는지 아는 선생님이 오셨다. 교부번호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아무 약이나 일단 처방을 하고, 그 밑에 빈칸에 손으로 적은 다음, 도장을 꽝 찍으면 된다고 했다. 교수님께서는 아무 약이나 처방하지 않고 열심히 꼬치꼬치 캐물어서 필요해 보이는 약을 처방을 내리고, 철자 안 틀리게 손으로 적은 다음, 도장을 찍으셨다.


그렇게 수기처방을 냈다.

신기했다. 전산마비 때도 본 적이 없는 수기처방을 내는구나! (나중에 전산마비 썰도 한 번 풀어보겠다.)

그리고 그 환자가 가고 난 후 간호사 선생님이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줬다. "OO약국에 재고 있대요."


의외로 실습을 돌다 보면 처방해야 하는데 처방할 수 없는 약들이 많다. 교수님들은 그런 경우 대부분 약제급여 체계가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사실 의료계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지만 내가 이해하기에는 약간 어렵다

의과대학에서는 급여 체계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의료법에서 부당이익 환수 뭐 그런 걸 배울 뿐이고, '환자의사사회'에서 현재 의료계의 문제! 이러면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운다. 의과대학에서 배우는 내용은 '어떤 병에는 어떤 약을 쓴다~'라고만 배울 뿐이지 '어떤 약을 보험이 되고 어떤 약은 보험이 안 되니 웬만하면 뭘로 처방하자~'는 나중에 일하면서 배우게 된다. 

또한, 우리는 약을 성분명으로 배우지만 실제로 처방은 상품명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아세트아미노펜이 아니라 타이레놀로 처방하는 거고, 약국에서 타이레놀 없다고 대체조제를 하려고 하면 환자가 항의하고 그러는 일이 좀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저게 뭐고 이게 뭐고, 쟤랑 얘는 성분이 같은데 왜 하나만 급여고 쟤는 아니고, 저 약이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급여 통과가 되었고 이건 오래되었는데 왜 통과가 안 되었지, 분명 배우기로는 이 상황에서 이 약을 쓰라고 했는데 왜 보험이 되는 약이 없지... 잘 모른다.


의료보험 제도나 급여 체계에 대해 편향되지 않고 구체적으로 배우는 기회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어렵지만 실습을 돌다 보면, 그게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p.s. 오늘 글이 좀 중구난방이 된 것 같다. 처음에는 도란사민도 약제급여가 문제라고 교수님께서 그러셔서 약제급여에 대한 내용으로 글을 쓰려고 했다. 근데 뉴스를 찾아보니 그런 말이 없어서 글의 방향이 이상하게 흘러간 것 같다. 그렇지만 교수님 말씀도 틀리진 않았다. 도란사민과 동일성분의 멜라스민의 경우 비급여이다. 그걸 계속 써야 하는 객혈 환자에게 비급여 약을 계속 처방할 순 없는 것 아닌가. 대체 왜 같은 성분인데 하나는 급여고 나머지는 비급여인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약가가 80원이면 생산하고 싶지 않을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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