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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레티아 Aug 03. 2023

너무 짧은 혈소판 유효기간

외상외과 실습 썰

이 이야기는 실제 내용이지만 각색했습니다.


외상외과 실습을 돌 때 심각한 출혈이 있는 환자분께서 오셨다. 혈압이 떨어져서 피를 줘야하는 상황이었다. 혈액형? 모르니까 일단 응급으로 O형 농축적혈구를 주렁주렁 달았다. 그때가 실습돌면서 응급 수혈하는 것을 처음 본 때여서 주렁주렁 달려있는 피를 보면서 의문이 들었다. 아니 왜 농축적혈구만 달지? 얼른 혈장과 혈소판도 달아야 하는 거 아닌가? 출혈이 적혈구만 선별적으로 되는 것은 아닐텐데, 혈액 내 다른 성분도 얼른 줘야 할 것 같은데...


우리가 피를 뽑으면 그 전체 성분을 '전혈'이라고 한다. 전체 피를 그냥 보관을 하게 되면 보관 기간 동안 적혈구 외에 피 속에 있는 혈액응고인자나 혈소판 등은 활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전혈은 적혈구, 혈장(혈액응고인자가 들어있다), 혈소판 등으로 분리해서 보관을 하게 되며, 각각 '농축적혈구', '신선동결혈장', '농축혈소판'이라고 부른다. 혹은 전혈헌혈이 아닌 경우는 '성분채혈혈소판'이라 부르는 것도 있다. 이 외에도 농축백혈구, 동결침전제제 등 다양한 혈액제제가 있지만 그건 다른 필요한 곳에 쓰이고, 응급 대량수혈 프로토콜에서는 전혈과 유사하게 적혈구, 혈장, 혈소판을 1:1:1의 비율로 동시에 주는 것이 권장된다.

혈액제제에 대해 궁금하다면 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를 참고하자:
https://www.bloodinfo.net/knrcbs/cm/cntnts/cntntsView.do?mi=1049&cntntsId=1126

잠시 교수님이 다른 처치를 하고 있는 동안, 간호사 선생님이 신선동결혈장을 들고오셨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신선동결혈장은 이름 그대로 얼어 있다. 그러니까 아무리 급해도 바로 줄 수 없고 열심히 녹인 다음에 투여가 가능한 것이다. 혈관으로 얼음덩어리를 넣을 순 없지 않는가? 농축적혈구는 냉장고에 보관해서 대충 가온만 하면 되는데, 한시가 급한데 안 녹고 있는 저 동결혈장을 보고 있다보니 답답했다.

그리고 열심히 처치를 하고 환자가 수술방으로 올라갈 때까지 혈소판은 보지 못했다. 이상하다, 혈소판은 상온보관인데. 대충 바로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래서 교수님께 여쭤보았다. 혈소판도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그러셨다. "혈소판은 병원에 없고 혈액원에 있어서 타와야해."


모든 식품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올해부터 소비기한으로 바뀐 것 같기는 하던데, 이 기한이 끝나면 얄짤없이 버려야 한다. 개중에는 먹어도 별 탈이 없던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 그 기간은 그 제품을 안전하게 먹으 수 있는 기한이기 때문에 지나면 탈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 혈액도 마찬가지이다. 혈액제제에는 유효기간이라는 것이 있고, 각 혈액제제의 유효기한을 보면 다음과 같다.

농축적혈구: 채혈 후 35일 , 신선동결혈장: 채혈 후 1년, 농축혈소판: 제조 후 120시간

120시간은 5일이다. 그런데 이 피가 제대로 된 피인가 검사하는 시간이 한 이틀 소요된다고 하면 혈소판이 가용한 기간은 한 3일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가뜩이나 일반 적혈구도 모자란 와중에, 언제 쓸지도 모르는 혈소판을 각 병원에서 가지고 있으면 쓰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뽑아 놓은 혈소판의 좀 더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혈액원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필요한 병원이 가져다가 쓰는 것이다.

물론 나는 나의 사례만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다른 병원은 또 다를 수 있다. 부속혈액원이 있는 곳은 자체적으로 헌혈, 검사, 분주 등을 하므로 상황이 더 나을 수도 있고, 혈액원이 먼 곳은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전반적으로 어떤 시스템인지 나는 잘 모른다.


다행히 우리 병원은 혈액원이 근처에 있어서 뛰어갔다오면 30분만에 받을 수 있지만 (아무리 급해도 그렇게 받아오지는 않을 것 같고) 내가 모르는 상황에 의해서 혈소판은 당일 제공을 못 받았던 것 같다. 가장 좋은 상황은 혈소판을 안 줘도 혈액검사 수치가 괜찮았을 것이며, 최악의 상황은 혈액원에 혈소판이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정확한 상황을 몰라서 더 이야기할 수 없지만, 피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길 바란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가이드라인, 프로토콜 등은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고 제일 좋다고 생각하여 전문가들이 이렇게 하자, 라고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그 가이드라인을 따르기에 혈소판은 유효기간 너무 짧다. 가장 좋은 치료를 어떻게 하는 줄 아는데, 그걸 못 한다니... 그렇다고 병원마다 혈소판을 상시 보유하기에는 리스크가 좀 있다. 일단 다 보유는 하고 안 쓰면 버리면 되지 않는가? 싶지만 매일매일 저렇게 응급대량수혈이 필요한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드라마가 아니다!) 나도 실습 도는 2주간 저렇게 대량으로 수혈하는 사람은 1명밖에 안 봤으며, 나머지는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수혈을 했다.


어떻게 하면 더 괜찮아질 수 있을까? 모르겠다. 대형종합병원에 의무적으로 혈액원을 설치한다? 그것도 좀 이상하다.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은 환자분들이라서 헌혈불가한 사람이 대부분인데. 혈액원과 몇 미터 이내에 병원을 설립한다? 말도 안 된다. 헌혈을 더 많이 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데... 모 종교단체 연구팀(?)이 힘내서 인공혈액를 개발한다? 내가 그쪽 연구현황은 몰라서 가능성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중에 의사가 되면 어쩔 수 없이 가이드라인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은근 비일비재하다) 어떻게 대처해야할지를 공부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국가시험 공부부터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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