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 참관 썰
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각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 외과도 수술 한 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니고, 저 정도면 그냥 외과에서 설명하고 약을 끊어도 되지 않을까? 심지어 학생 시험문제 낼 때 '수술 전에 약을 어떻게 끊어야 하는가'는 외과 파트이다. 내가 교수님께 직접 물어본 것은아니지만 실습을 돌면서 관찰해보니 이렇게 환자를 빙빙 돌리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아래 이야기는 개인적인 협소한 시각에서 본 것이라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저 내용을 레퍼런스로 삼지 마시고 꼭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세요!
첫째, 돈 때문이다.
그 과에 가야 그 과가 돈을 번다. 쉽게 설명해서 심장초음파를 예시로 들면, 외과에서 "어? 이 환자 심전도가 이상하니까 심초음파를 찍어야 할 것 같은데?" 하고 심초음파 오더를 낼 수 있다. '오더를 내다'라는 표현은 처치료를 낸다, 검사를 예약한다, 뭐 그런 뜻이다. 환자에게 수행되는 모든 항목들은 오더가 나가야 돈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오더를 낸 과가 그 행위에 대한 돈을 받는다. 즉, 심초음파는 심장내과 선생님들이 찍어주겠지만 오더를 낸 건 외과라서 외과가 돈을 먹는다. 심초음파가 건강보험이 안 되면 20만원이 넘는 것을 알고 있는데, 엄청난 수익을 심장내과에서 잃어버리는 셈이다. 그래서 심장내과 입장에서는 꼭 심장내과에서 심초음파 오더가 나와야 하고, 그래서 심전도가 이상하면 꼭 심장내과로 보내서 심초음파를 찍어야 하는 것이다.
비슷한 일이 응급실에서도 많이 일어난다. 응급실에서 다른 과 선생님을 불렀는데 다른 과가 오더를 그냥 내면 응급의학과가 돈을 받는다. 꼭 그래서 자기 과 앞으로 오더를 내야한다. 처치는 우리 과가 했는데, 돈을 남의 과가 먹으면 속상하지 않겠는가. 대학병원이므로 본인 과의 수익이 전부 본인에게 오는 것이 아니긴 하지만 (그냥 월급쟁이...) 성과급이 있기도 하고, 약간 병원 내 목소리가 커진다. 비싼 기기 같은 거 살 때 '우리가 얼마를 벌어다주는데 이거 기계 오래되었었으니 바꾸자' 이러면서...
그래서 요즘은 통합진료도 좀 있다. 대표적 예시가 다학제 진료다. 암 환자 같은 경우 기본적으로 내과, 외과, 병리과,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진단검사의학과 등 여러 과가 관여해야 한다. 이 과를 전부 뺑뺑이 돌면 힘들고 과별 의사소통도 안 되니까 다 같이 한 자리에 모여서 진료를 하게 되고, '다학제 통합진료 비용'로 청구되어 적당히 나눠먹게 된다. 물론 병원 입장에서는 각각 보는 것보다는 손해이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괜찮다. 학생 입장에서는 다학제가 교수님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침 일찍이나 점심시간에 하므로 좋진 않다. 배고파여...
내가 경험하고 본 거 이외에 찾아본 자료들을 붙여보자면
2008년도 기사: 이과 저과 뺑뺑이 안돌리면 진찰료 못 줘 https://www.medicaltimes.com/News/52024
2016년도 논문: 다학제 통합진료: 문제점과 해결방안 https://www.jkma.kr/DOIx.php?id=10.5124/jkma.2016.59.2.95
다 오래된 자료이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적용이 되는 내용인 것 같다.
둘째, 책임소재 때문이다.
만약에 의료 사고가 났다, 그러면 소송이 걸린다. 그러면 이제 책임소재를 따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수술 중 과다출혈로 상태가 안 좋아졌는데 알고보니 피를 묽게 하는 약을 먹고 있는 상태였다면 그 약을 먹어도 된다고 한 과에 책임소재가 가게 된다. 물론 그 과도 가이드라인에 따라서 약을 끊는 위험성이 먹는 위험성보다 크다 생각해서 먹으라고 한 것일 테지만, 교수님들 말을 들어보면 소송 과정이 매우 힘들다고 한다. 전혀 나와 관련이 없어도 (ex. 마취에서 잘 깬 환자가 소송을 걸었을 때 마취과 의사) 같이 소송에 걸려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최대한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여러 과의 컨설트를 받아보는 것이 아닐까...
셋째, 환자의 신뢰도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의사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모르겠다. 실습을 돌다보면 의사에 대한 신뢰가 너무 떨어지신 분들이 있다. 치과를 제외한 진료과는 모두 의과대학 졸업, 그리고 인턴 생활 이후에 고르게 된다. 따라서 다른 과 내용을 아예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외과 선생님이라도 심전도를 읽을 수 있고, 고혈압 약 처방하는 법을 알고 있고, 전립선 비대증의 치료 방법에 대해 알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더라도 개략적인 것은 알기 때문에 설명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환자분들이 다른 과 같으면 안 믿는다. 예를 들어, 신경과 입원 환자 중에 가슴이 아프다는 분이 계셨다. 가슴이 아픈 이유는 심장 혈관이 좁아져서 그럴 수 있지만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심장 혈관과 심초음파는 멀쩡했고 아무래도 역류성 식도염과 증상이 겹치는 것이 있어서 내시경을 추천드렸는데, 무슨 가슴이 아프다는데 내시경을 받냐고, 나는 가슴이 아프다고 계속 그러셨다.
그래서 그냥 다른 과 내용은 다른 과로 보내버린다. 그 과 선생님 말은 믿겠지. 물론 그 과 선생님 말도 못 믿는 분들도 계시다. 그래도 그건 그 과에서 알아서 할 거다.
그래서 아마 이런 사유들로 수술 전 평가 클리닉을 위해 여러 과를 뺑뺑 돌고, 그냥 여기서 약 처방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과 갔다 저 과 갔다 하는 것이다. 뺑뺑 도는 것이 몸은 힘들겠지만 너무 안 좋게 생각하거나 안 가겠다고 떼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 가면 마취과에서 수술 전 평가가 불충분하다며 돌려보내서 수술 일정이 꼬일 수도 있고, 환자를 설득하는 의료진들은 돈을 더 많이 뜯어내기 위한 사악한 작자들이 아니라 그냥 주어진 제도 내에서, 자기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다시 한 번 쓰지만 이 글은 한 개인의 의견이지 이 글로 의대생은 다 이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확대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 인터넷 세상이 너무 살벌해서 좀 걱정이 되긴 하는데, 나는 수술 전 환자들이 평가로 교수님을 3분 이내로 만나는 걸 위해 하루종일 기다리는 것이 안타깝지만 고민해보니 뺑뺑이를 돌리는 건 현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