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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병원 실습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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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미레티아 Jul 12. 2023

휴대폰 없이 8시간 버티기

정신건강의학과 실습썰

본 이야기는 실화 기반이지만 각색하였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실습은 의대생에게 호불호가 갈린다. 왜냐하면 보통 8시간 동안 보호병동(과거 폐쇄병동이라 불렸다)에서 환자들과 같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무난하게 잘 지내는 편이었지만 다시 돌라고 하면 돌지는 않을 것 같다.

보호병동은 치료적 목적으로 외출이 제한되고, 휴대폰은 사용 못 하며 TV도 병동 사람들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내용만 보게 된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분도 꽤 되신다. 사회로부터 혹은 남으로부터 상처받으신 분들은 병동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며 만족해하시는데 며칠 지나면 심심하다고 그러신다. 물론 보호병동은 놀 거리가 있다. 우리 병원 기준으로 탁구대, 런닝머신, 책, 보드게임, 퍼즐, 전자피아노, 그리고 실습학생들. 그 외에 종이접기, 색칠놀이 등을 사 오는 환자도 계시다. 그렇지만 보호병동 입원은 웬만하면 1주일을 넘고 몇 달씩 계시는 경우도 있으니 저런 콘텐츠로 버티는 것이 여간 심심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실습 학생은 여러 콘텐츠를 구상해야 한다. 일단 수다 콘텐츠. 환자 취향에 맞추면 더욱 좋다. 나는 경제에 관심 있는 환자와 친해져서 주식을 안 하지만 매일의 주식상황을 외워갔다. 젊은 분은 MBTI, 연예 뉴스 등 이야기를 많이 했다. 수다를 떠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병동 TV이다. TV는 웬만하면 계속 틀어놓는데, 대화할 내용이 떨어지면 잠깐 TV를 보고 보이는 것을 토대로 이야기의 물꼬를 틀면 된다. 저 연예인이 잘생겼네 아니다 저 사람이 더 낫다, 혹시 저 사람이 나왔던 영화 봤냐 명작이다, 요리 영상이 나오면 우리 병원 식당에도 저런 메뉴가 나왔으면 좋겠다, 동물이 나오면 강아지가 귀엽냐 고양이가 귀엽냐... 당연히 강아지가 귀엽지

다음은 게임 콘텐츠. 루미큐브는 이해가 쉽고 모두가 즐기는데 플레이타임이 좀 짧다. 부루마블이 안 끝나서 좋다. 퍼즐은 여러 명이 달려들어도 꽤 시간이 걸려서 매우 좋다. 하지만 한 번 하면 지친다는 것이 문제이다. 어느 날은 실습생이 레크리에이션을 준비하는 날도 있는데 몸으로 말해요, 그림 이어 그리기, 인물퀴즈 등 나영석 피디님 예능이 많이 도움이 된다. 문제는 우리가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만 수두룩 빽빽 출제했다. 예전엔 소아 환자들에게 언니 소리 들었는데, 이제는 이모가 미안해요...

운동 콘텐츠는 제일 힘든 것 중 하나이다. 탁구대는 웬만한 대학병원 보호병동에 있어서 장기입원, 재입원 환자는 탁구를 정말 잘 친다. 나는 정신건강의학과 실습을 돌기 전 탁구를 쳐 본 적이 없다. 실력차이도 있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환자들은 가동성 좋은 입원복이지만 실습생은 정장에 의사가운, 구두를 신었다. (참고: 며칠 후부터 포기하고 끈 없는 운동화를 신었다.) 그렇지만 환자분들은 나에게 계속 탁구를 쳐 달라고 했다. 다른 선생님 불러올게요~라고 하지만 그분이 다른 환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 내가 쳐야지 뭐. 혹은 남자 선생님을 무서워하는 환자다? 어쩔 수 없다. 엉망진창이라도 쳐야지. 그렇게 1주일 만에 탁구실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가끔 공부 콘텐츠도 열렸다. 선생님은 공부를 잘했죠? 저 공부 좀 가르쳐주세요! 그러면서 사회 경제 한자 등 문과 책을 들고 오면 어어어... 나는 이과였는데...

정말 아쉬웠던 것은 나는 뜨개질도 하고, 전통 매듭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공예 콘텐츠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보호병동에 끈 같은 것은 전부 반입 금지였다. 스케치북은 철사가 돌돌 말려있어서 반입 금지다. 진짜 뜨개질이 시간 잘 가는데... 그렇게 무해하고 시간이 잘 안 가는 콘텐츠를 갖고 8시간을 병동에서 보내고 나면 진이 빠진다. 생산적인 일은 별로 안 해서 오늘 뭐 했니?라는 질문에 글쎄... 뭐 한 게 없는 것 같은데...라고 답하기도 한다.

그리도 실습 후 기숙사에 돌아와서는 역시 비생산적이지만 휴대폰을 몇 시간씩 만지고 있는다. 희한하게 강제로 휴대폰을 못 하니 반항심리(?)로 더 하고 싶어 진다. 얼른 자야 내일도 출근을 하는데... 그렇게 다크서클이 생기고 판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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