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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레티아 Sep 01. 2023

전이되기 전에 그냥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받으세요

종양내과 실습 썰

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각색하였습니다.

종양내과는 암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내과이다. 어? 암 치료는 외과에서 하는 게 아닌가요?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암 관련 업무는 거의 모든 과에서 다 한다. 외과는 암을 잘라서 제거하는 일을 하고, 소화기내과, 호흡기내과 등 여러 내과들은 암 진단을 내리거나 내시경, 조직검사 등을 하고... 정신과를 제외하면 다 암을 알아야 하는 분과인 것 같다. 어쨌든 암을 치료하는 방법은 대충 분류하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물리적 절제. 수술로 자를 수도 있고 내시경으로 살짝 포를 뜨듯이 잘라낼 수도 있다. 둘째, 항암치료. 다양한 항암제를 암의 종류에 따라 다 적절하게 처방하여서 치료를 한다. 요즘은 표적항암제 등도 나왔다. 셋째, 방사선 치료. 방사선을 암이 있는 부위에만 쪼아버리면 암이 죽어버린다. 종양내과는 여기서 항암치료를 담당하는 과이다. 


항암치료는 또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수술 전에 종양의 크기를 줄여보고자 하는 경우 (neoadjuvant), 수술 후에 혹시 눈에 안 보이는 짜잘한 암을 죽이기 위해 하는 경우 (adjuvant), 항암치료가 제일 잘 들어서 그게 1차 치료인 경우 (ex. 소세포폐암), 수술이 불가능하여 남은 여생을 덜 고통스럽고 조금이나마 늘려보고자 하는 항암치료 (ex. 전이가 된 4기 암). 나는 실습하면서 종양내과에서 4기 암인 분들을 제일 많이 봤다. 그래도 요즘 항암제가 새로 개발된 것도 많아서 생각보다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 


어느 날, 항암치료실을 구경하고 있던 우리에게 종양내과 교수님이 제일 안타까웠던 환자 이야기를 해주셨다. 신장암 환자분이었다고 한다. 젊은 환자분이었는데 현실을 믿기 어려웠던 것인지, "저 서울 한 번 다녀오면 안 될까요?"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병원은 수도권이고,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상급종합병원이지만, 그래도 전국 순위로 보면 서울에 있는 병원에 밀린다. 그 순위를 누가 따지는지는 모르겠지만 환자분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니까 훨씬 좋다는 곳으로 진료를 보고 싶어 한다. 당연히.


교수님께서는 환자에게 예약이 되어있냐고 물었지만 이제 예약을 한다고 했고, 그러면 그냥 여기서 치료받으라고 권고하셨다. 어차피 항암제는 국제 가이드라인에 따라 투여하기 때문에 이 병원이나 저 병원이나 약의 종류와 용량이 같다. 신장암은 빨리 자라기 때문에 빨리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그래도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환자분께서는 고집을 부렸고, 그래, 서울 진료를 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몇 달 뒤, 암이 다른 장기로 퍼지고 증상이 있어서 환자분께서는 다시 우리 병원에 내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분은 여기서 치료받겠다고, 치료해 달라고 그랬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울에 있는 병원이 인기가 많고 예약이 밀려서 아직 가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때, 몇 달 전에 시작했더라면 훨씬 더 기대여명이 길어지고 이렇게까지 고통받을 필요는 없었을 텐데. 안타까운 사연이다.


의외로 그런 환자분들이 많다. 대장항문외과 실습 때에도 한 환자분이 서울의 큰 병원에 예약을 걸어두었는데 3개월 뒤에나 가능하다고 그래서 일단 예약을 걸어놓고 우리 병원에 왔는데 오자마자 거의 바로 항암치료 시작하고 암 사이즈가 많이 줄어들어서 수술까지 할 수 있으셨다. 그분은 우리 교수님이 명의라고 막 칭송하셨는데 내 생각에는 환자분의 빠른 판단력이 환자분을 살린 거다. 그래, 그렇게 예약을 걸어놓고 될 때까지 진료받고 진료기록 들고 그쪽으로 가셔도 괜찮으니까 제발 전이가 되기 전에, 퍼지기 전에 가까운 데에서, 빨리 되는 곳에서 치료 좀 받았으면 좋겠다. 


교수 실력 없을까 봐, 큰 병원 갔으면 더 좋을 결과가 있을까 봐, 그걸 걱정하는 건 이해를 한다. 나도 당장 올해가 마지막 학년인데 내 성적을 들고 큰 병원으로 갈까 그냥 여기 남을까 고민 중인데 확실히 성적이 좋으면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그런 병원으로 더 많이 가기는 한다. 하지만 교수의 실력보다 시간이 더 급하다면, 시간을 줄이는 걸 추천한다. 아무리 훌륭한 의사라도 이미 질병이 심하게 진행되어 죽음이 예견된 상황에서는 살릴 수 없다.


p.s. 내부에서 보면 큰 병원이라도 '뭐야 뽀록인가' 싶은 교수님이 있고 작은 병원이라도 '와 이런 명의가 왜 여기 있음'하는 경우가 있다. 재미있는 건 외부에서 보는 명의는 친절하고 TV 많이 나와야 명의인 경우가 많았다. 보니까 병원 시스템이 애매해서 그런 것 같다. 교수는 연구를 해서 논문을 써야 하는데, 의사는 연구 논문보다는 치료를 잘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서비스직이라 친절해야 하고, 비영리기관이라고는 하지만 돈도 벌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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