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미혼이고, 아이가 없다.
사실 '미혼이고'와 '아이가' 사이에 '당연히'라는 말을 쓸까 하다가 생각해보면 미혼도 아이가 있을 수 있고, 요즘 같은 저출산 상황에서는 나보다야 미혼모, 미혼부가 훨씬 사회에는 공헌을 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손쉽게 '당연히'란 말은 안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난 아이가 없다. 어쩌다보니 내 친구들 중에는 아이가 있는 녀석이 하나 밖에 없는데, 나 포함 미혼 둘은 그렇다 쳐도 기혼 둘도 아이를 가지고 싶다 지나가듯 이야기는 하지만, 이래저래 쉽지 않은 게 요즘 아이 갖는 일이지 싶다.
아주 오래 전 아이 교육문제로 싸워본 적은 있다. 대체 이게 뭔 소린가 싶으시겠으나 없는 아이로도 싸울 수 있다는 걸 나도 그때 처음 알았다.
"여자아이는 어렸을 때 발레를 기본으로 시켜야 해."
여기서 그냥 그러자 그러던지, 아니면 난 잘 모르겠다 그러던지, 늘 하던대로 황희정승마냥 '니 생각이 옳다' 그랬으면 될 일을 나도 무슨 바람인지 그땐 그게 안됐다. 거진 한 시간도 넘게 그러고 있었는데, 머릿속에서는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란 물음표와 '이런 건 절대 물러서서는 안되는 거야!'란 느낌표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더랬다.
"아이가 하고 싶은 걸 시켜야지. 억지로 시킨다고 되냐고."
"하고 싶어하지 않아도 어떤 건 필요하다니까. 발레는 체형 교정에 도움이 된단 말이야. 여자한테 그게 얼마나 중요한데."
"벌써부터 치맛바람이 어마어마하다."
"아이는 하고 싶어하질 않는다니까. 일단 부모가 능력껏 시켜줘야 하는 거야. 그 다음에 길을 찾아야지."
"난 그냥 하고 싶어하는 것만 시키고 싶은데."
"그게 되냐고. 니가 엄마 마음을 몰라서 그래."
결론이 나와서 끝낸 게 아니었다. 난 서둘러 대체 왜 우리가 이걸로 이래야 하냐며 끝내려고 했는데 상대는 계속 '엄마 마음을 모른다'며 서운해 했다. 마지막에는 알아서 하라고, 결국 엄마 몫이겠지 하고 달랬지만 한동안 그 서운함은 풀리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 마음만 가르쳐주고 결혼은 다른 사람이랑 했으니 결과적으론 내가 서운할 일이긴 한데, 뭐 이제 다 지나간 일이다.
여하튼 난 아이는 없지만 대신 조카가 셋이다. 첫째 때는 마냥 신기했고, 둘째 소식을 들었을 땐 그럴 때가 됐지 싶었는데, 셋째 소식을 듣고는 동생 부부가 원래 그렇게 사이가 좋았나 싶었다. 셋 다 여자아이인데 남자아이가 없는 서운함 같은 건 전혀 없다. 근본적으로 내가 서운할 일도 아니거니와, 내가 내 부모님의 아들이다보니 느끼는 거지만 아들새끼는 키워봐야 대부분의 경우 소용이 거의 없다.
이건 진실이라 굳게 믿고 있는데 (내 믿음을 깨려고 들지 마시라) 세상에서 울 조카 셋이 가장 예쁜 거 같다. 그런데 한 배에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셋이 다 다른 게 신기할 따름이다.
첫째는 확실히 여유가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내 휴대폰엔 아기였던 첫째의 손에다 막 핀 벚꽃을 쥐어주고 찍은 사진이 있는데, 이제 그 녀석이 너무 커져서 안아 올릴 수도 없다. 지금이야 팔 벌리면 쏙 들어오고 이마에 뽀뽀를 해도 가만히 있지만, 조만간 아예 안기려고도 안할 거다. 이미 삼촌이 가도 자기 학원 스케쥴은 다 소화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제 엄마가 삼촌 왔으니 학원 하루 안가도 된다 했는데, 주중에 감기로 하루 빠져서 더 빠지면 안된다 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대견하면서도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주말에 제 엄마 아빠가 늦게 일어날 때면 시리얼, 우유 꺼내서 동생들 먹인다 하는데 정말 다 컸다 싶기도 하다.
둘째는 확실히 투쟁심이 있다. 정확한 절대적 성취도야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확실히 뭐든 열심히 하려고 한다. 언니가 할 수 있으면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식이다. 놀러가면 그 동안 자기가 만든 것들을 전시하듯 보여주는데 확실히 저때 저런 걸 다 할 수 있나 싶다. 뭘 하든 투쟁심이 발휘되어서 지는 걸 정말 못 참고, 이길 때까지 하려고 든다. 얘는 확실히 뭔가를 해내겠구나 싶을 때가 많다. 아마 나중에 늙어서 잘난 조카 덕을 봐야 할 일이 생긴다고 하면 이 친구 덕을 가장 많이 보게 되지 않을까?
가장 초탈한 게 막내다. 솔직히 얘는 정말 뭔가 싶다. 일단 대부분의 일에 집착을 거의 하지 않는다. 첫째 둘째가 어릴 땐 놀아달라 수준을 넘어서 아예 내 품에서 떨어지려 들질 않다보니 어딜 가면 양 팔에 아이 하나씩 안고 다녀야 했는데, 막내는 안아준 기억이 거의 없다. 잘 안기려고 들질 않는다. 그게 안기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나 안으면 삼촌 힘드니까.'의 태도다. 언니들이 사소한 일로 투닥거리고 있으면 '언니들 또 저러네' 하는 표정으로 제 할 일을 한다. 대신 애교는 셋 중 가장 많아서 실상 부모의 사랑은 이 친구가 가장 쓸어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당연히 아이들이니까 셋 중 누가 가장 예쁨을 받는가에 각자 관심이 있고, 난 되도록이면 셋 모두에게 골고루 관심을 주려고 하는데 실상 어쩔 수 없이 가장 먼저 마음이 가는 건 첫째긴 하다.
이 친구가 조리원에서 나와서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 기어다니고 일어서고 첫 발을 떼던 모든 순간들이 워낙 가까이에서 벌어졌기에 더욱 그렇다. 여름에 태어나서 첫째는 늘 모기장 안에서 꼬물거리고 있었다. 며칠동안 가까이 가는 것자체가 무슨 신성모독인듯 느껴져 피하다가 어느날 용기를 내 다가가 모기장 아래로 손을 쓱 집어넣었다. 조그만 손 위에 내 새끼손가락을 올려놓자 아이는 마치 동앗줄을 쥐듯 온 힘을 다해 꽉 쥐었다. 그 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거다.
아무래도 나도 첫째고 이 친구도 첫째라 그런지 나름의 고충을 아는 것도 비슷하거니와 성향도 비슷하다. 내 동생이자 조카들의 어머니인 친구와 대화를 해보면 확실히 첫째 조카와 내 성격이 비슷한데가 꽤 있다. 약간의 인정욕구와, 주변을 먼저 살피려 든다는 거. 그것 뿐 아니라 이 친구가 편지 한 줄 한 줄 쓰는 거보면 문장을 사람 마음에 집어넣는 재주도 있어서 또 다른 측면으로 마음이 간다.
개인적으로는 둘째는 살짝 안쓰러운 게 있다. 애를 쓰지만 왠지 돌아오는 게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고, 가만 보면 첫째 챙기고 막내 챙기고 둘째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러는 것 같다. 안그러려고 하는데 자꾸 순서가 그렇게 된다. 그런게 혹여나 상처가 될까 싶어 엄마나 나나 의외로 가장 많이 눈치를 보게 되는 게 둘째다. 그런데 또 둘 다 둘째인 제 부모들의 의견으로는 이 친구는 확실히 강단이 있어서 주변 평가에 의외로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뭔가를 성취할 때까지 밀어붙이는 게 있다고 하니, 어쩌면 내가 보는 건 삼촌의 괜한 기우일 수도 있겠다 싶다.
셋째는 아직까진 천진난만이다. 제 할머니나 내가 제 언니들에게 이미 선점을 당해 있으면 그냥 혼자 노실 때도 많다. 아마 이 친구는 누가 누굴 얼마만큼 좋아하는지 같은 데는 영영 관심도 없을 거다.
시간이 지나면 셋 다 제 궤도에 올라가서 제 삶을 향해 나아갈테고, 난 연료가 떨어진 1차로켓처럼 아이들에게서 떨어져 나갈 거다. 사실 내가 1차로켓이라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난 지상에 있는 우주인 수송용 엘리베이터 같은 존재다. 이미 쏘아져 올라간 아이들을 보면서 응원하는 게 내 몫이다.
생각해보면 아이 교육을 두고 엄마 마음을 알려준 친구가 내게 참 많은 걸 남기고 갔는데, 그 중 가장 큰 게 바로 내 동생과의 관계다.
원래 난 동생과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성격이 정말 반대다. 행동패턴도 반대다. 그러다보니 어릴적엔 맨날 싸웠고, 커서는 스케쥴 때문에 볼 일이 없어지니 완전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그러다 군대 휴가를 나왔는데 이 녀석이 새벽 한시쯤 몰래 나가 두 시간인가 있다가 들어오는 거다. 사실 뒤따라 나가봤는데 집 앞 골목에서 남자친구와 얘길 하는 것 같더라. 난 기다리다 슬슬 열이 올라서 돌아온 아이한테 뭐하는 거냐고 언성을 높였는데, 동생은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고, 집에 있는 애를 새벽에 불러내는 놈은 대체 뭐하는 놈이냐고 커진 내 목소리에 부모님이 다 일어나시고 말았다.
"아빠야?"
내가 그 일을 얘기하자 그 친구가 한 첫마디가 그랬다.
"뭐?"
"너 니 동생 아빠냐고."
"무슨 소리야."
"난 오빠가 없잖아. 그래서 평생 오빠가 있었으면 했거든. 그런데 넌 오빠잖아, 오빠 노릇을 해. 아빠 노릇 하지 말라고. 내가 생각하는 오빠는 어떤 일이 벌어지든 일단 동생 편 들어주는 사람이야."
시키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곧잘 하는 편이어서 난 집에 돌아오자마자 동생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이후로 오빠 노릇을 하기로 했다. 그러자 그동안 멀다고만 생각했던 동생과 많이 친해졌다. 지금도 내 모든 관계의 평소 지론대로 '무소식이 희소식'을 실천하고는 있지만, 결코 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이후로 오빠노릇을 잘 했는지는 모르겠다. 도리어 철없는 오빠 챙기느라 동생이 고생이 많지 싶다.
난 세 꼬맹이들의 삼촌이다. 영원히 삼촌 노릇을 하고 싶다. 아빠도 엄마도 아니니 내 몫은 또 다시 아이들 편을 무조건 들어주는 것일테다. 삼촌이 놀러가기만 하면 무서운 엄마 눈치 안보고 TV 만화 몇 개 더 볼 수 있고, 먹고 싶은 햄버거며 아이스크림이며 맘껏 먹을 수 있고, 놀러가고 싶은 곳에 데려다 줄 수 있다. 그게 가장 당장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삼촌 노릇이다. 앞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지든 아이들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비밀아지트가 되어주고 싶다. 그러기에 나 자신이 조금은 더 건실하게 살 필요가 있다.
아, 참 아무리 그래도 게임은 절대 져주지 않는다. 오목을 두든, 알까기를 하든, 할리갈리를 하든, 뱀사다리게임을 하든, 루미큐브를 하든 절대 삼촌은 조카에게 일부러 져주지 않는다. 그것 또한 삼촌 노릇 중 하나다.